2014년 12월 8일 월요일

32. 동물 병원에서는 수십만원을 쓰면서 왜 병원에서 1천원 비싸다고 화를 낼까?

저희 병원은 요양병원입니다. 요양병원은 입원 환자를 주로 보는 병원인데, 추가적인 서비스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외래 진료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외래로 오신 한 환자분이 진료를 받고나서 너무 화를 내신것이었습니다. 다른 병원보다 왜 이 병원은 비싸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결제를 안하시고 그냥 가버리셨습니다.

내과 의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자기부담금이 30%로 2900원 정도 나오는데, 저희병원은 요양병원인 관계로 자기부담금이 40%를 적용받아, 4000원 가량 나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자기부담금을 깎아주고 싶지만, 그것은 불법 행위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과 외래를 계속 유지하다가는 고객들로부터 바가지 씌우는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줄수 있겠다 싶어 외래 진료를 접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들은 반려 동물이 아플 때 동물병원에 가서는 수십만원을 쉽게 쓰면서 왜 병원에 와서는 1천원 정도 더 나오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할까요? 이는 심적 회계 (Mental Accounting)라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친구가 저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번달 식료품비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불쌍한 나머지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황당하게 느꼈습니다. 그 친구의 책상에는 여러개의 통이 있었습니다. 그 통들에는 교통비, 사무용품비, 공과금, 자녀교육비, 식료품비 등의 라벨이 각각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료품비라고 씌어 있는 통은 비어있었지만, 나머지 통들은 돈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돈이 많이 있는것 같은데 왜 나에게 돈을 빌리려 하는가 물어보니, 식료품비 통이 비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물론 실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작은 지갑들이 여러개 있어서, 돈을 용도에 맞게 따로 관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은 것입니다. 돈이면 다 똑같은 돈인데, 막상 사람들은 돈에 라벨이 붙어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대출로 빚을 수억원 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성실하고 알뜰한 사람입니다. 월급을 아껴쓰고 차곡 차곡 모아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그런 성실한 사람이 해외 여행 중 재미삼아 카지노에 놀러갔다가, 수천만원을 따게되었습니다. 평소같으면 돈이 생기면 빚을 갚는데 썼는데, 카지노에서 돈을 따자 다시 도박을 하거나, 아니면 좋은 레스토랑, 명품 등을 사면서 쉽게 써버렸습니다. 도박으로 딴 돈이나 아껴쓰면서 알뜰하게 모은 돈이나 똑같은 돈인데, 심리적으로 다르게 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라디오에서 재무 상담을 하는 프로그램에서 들은 얘기인데, 돈을 아껴쓰려면 통장을 따로 관리하는게 효과적이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생활비, 공과금비 등등 항목에 따라 통장을 따로 만들고 그 예산 내에서 지출하면, 더 규모있게 쓸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역시 돈에 라벨을 붙여두고 항목별로 관리하라는 의미로 보입니다. 심적 회계를 활용하라는 뜻이겠지요. 

강남에 한 수면클리닉이 있었습니다. 수면 클리닉은 불면증이나 코골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입니다. 수면클리닉의 가장 큰 수익원은 수면 다원 검사입니다. 수면다원검사는 환자가 하룻밤 수면클리닉에 있는 방에서 자면서 수면 패턴을 검사하는 방법입니다. 머리에는 뇌파 검사 장치를, 가슴에는 심전도를, 코에는 호흡을 측정하는 장치 등을 주렁 주렁 붙이고 잠을 자게 됩니다. 이 검사를 하면 환자의 수면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코골이 같은 수면 질환을 해결하는 매우 효과적인 검사입니다. 이 검사의 비용은 보통 50만원에서 70만원 수준입니다. 곧 보험 수가 적용을 받아 환자가 부담하는 자기부담금은 훨씬 떨어지게 됩니다. 수면센터가 잘 운영되려면 검사실을 여러개 갖추어놓고, 그 검사실을 많이 활용해야 합니다. 비즈니스 구조는 호텔 비즈니스와 비슷한 면이 많은 듯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장님은 강남에서 수면클리닉을 열었는데, 병원이 잘 되자, 확장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유명 호텔에 입점을 했습니다. 그 호텔에 놀러갔다가 수면클리닉이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그 원장님의 사업성이 대단하다고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호텔에 놀러왔다가, 기왕이면 수면검사도 하고 일석 이조의 효과를 누릴 수 있을 듯 했습니다. 수면 검사를 받으면서 호텔 서비스도 제공받으니 참 좋을 것 같지 같습니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 확인해보니, 호텔에 입점한 수면클리닉은 실패하고 문닫았다고 합니다. 

이 시도가 실패한 이유는 마케팅적으로 여러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는 실패 원인은 사람들의 심적 회계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갑은 놀러갈 때 쓰는 돈과 병원 갈 때 쓰는 돈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호텔은 놀러가기 위한 것이고 병원은 치료하기 위해 가는 곳인데, 그 둘을 합쳐서 일석 이조로 이용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 역시 가족들과 호텔 놀러가면서 이런 저런 장치 달고 자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요양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건설업자들로부터 여러가지 사업 제안이 들어옵니다. 제주도나 송도에 큰 땅을 개발해서, 거기다 골프장도 짓고, 실버 타운도 만들고, 요양병원도 지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얼핏 들으면 참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실버타운에 사시는 분들이 골프장도 이용하고, 또 아프시면 요양병원에서 진료도 받을 수 있습니다. 또 자식들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놀러왔다가 골프도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너지가 날 요소들이 곳곳에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좀처럼 잘 되기 어려운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같으면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부모님을 뵈러 갈 때와 골프치러 놀러갈 때는 서로 다른 시간을 할애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 실버타운에 계신 어른들이 아프면 근처 요양병원을 가기 보다는 보다 전문적인 대학병원으로 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심적회계를 통해 설명한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의료를 위한 지갑과 오락을 위한 지갑을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의료와 오락을 동시에 이용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술값을 수십만원 계산하고 나와서 대리운전비 아깝다고 손수 운전을 하다가 신세 망치는 경우도 나름 심적회계가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유명 경영대학의 교수는 심적 회계를 활용해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연초에 200만원 정도를 복지 재단에 기부를 하기로 하고 비축했다가, 교통 범칙금 등 생각지 않은 지출이 생기면 기부금에서 까 나가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남은돈을 연말에 복지 재단에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교통 범칙금을 내면서 어차피 나가기로 한 돈에서 나가는 것이니 덜 안타까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많다고 병원 와서 넉넉하게 돈을 쓰지는 않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부자건 서민이건 병원에서 진료받을 때는 3천원이라는 기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준보다 1천원 정도 비싸면, 그냥 1천원 비싼 것이 아니라, 3천원 대비 1천원, 즉 30%나 비싸다고 느끼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동물병원에 가면 수십만원 써야 한다는 기준도 정해져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동물병원에서 원래 30만원인데 2만원 깎아준다고 하면 싸다고 느끼나봅니다. 

아무쪼록 동물보다 사람을 진료하는데 가치를 너무 인정 못받는다는 사실이 섭섭합니다. 


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31. 인생의 세번 기회

제 나이는 40대 중반입니다. 제가 30대 일 때는 40대 중반 어른들을 보면 많이 늙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을 살아보니, 지금이 인생의 가장 황금기라고 생각됩니다.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회사건 다른 조직이건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40대 중반입니다. 세상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려고 합니다.

40대 중반 나이인 제가 이런 얘기하면 인생의 선배들이 뭐라고 할 것 같긴 하지만, 제 나이에도 돌아켜보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 인생 얘기 한다고 욕 할 수도 있지만, 그냥 욕 하십시오. 저는 제 얘기 해야 하겠습니다.

제 인생에도 크게 세 번의 기회가 왔다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 중 첫번째 기회는 2000년 무렵이었습니다. 당시 정신과 전공의 2년차, 30대 초반, 총각이었던 저는, 주말이면 클럽프렌즈라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파티장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스펙좋은 괜찮은 아가씨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현재 제 와이프도 그 곳에서 만났습니다.

클럽프렌즈 파티장에 가서 아가씨들을 만나는 것도 괜찮은 재미였지만,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괜찮은 아가씨들을 만나기 위해 잘나가는 벤처 기업가들이 몰려 들었고, 저는 그 분들과 인맥을 쌓으면서, 비즈니스 세계에 눈을 뜨게되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초창기 벤처 1세대 스타 기업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회사를 꽤 괜찮은 가격을 받고 다른 회사에 넘긴 상태였습니다. 당시로써는 젊은 나이에 큰 돈을 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계셨습니다. 어린 나이에 돈을 많이 번 그분은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제가 돈 벌고 싶어하고, 주식에도 관심이 많은 것을 안 그 분은 저에게 제안을 하셨습니다.

"돈 벌고 싶지?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

"뭔데요?"

"네이버 주식이 좀 있는데 일부 처분했으면 하는데, 니가 한 2000만원어치 인수해라."

"왜 저에게 팔려고 하시죠?"

"그냥 네가 돈 벌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가진 것 전부 파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파는 거야."

당시 우리나라 검색 시장은 춘추 전국 시대였습니다. 야후, 알타비스타, 다음, 라이코스, 한미르 등 쟁쟁한 회사들이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야후가 단연 독보적이었고, 다음과 라이코스가 잘나가는 편이었으며, 한미르는 당시 지도 서비스를 최초로 내놓으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치고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신생회사인 네이버는 별다른 내 놓을 것이 없는 듯 했습니다. IT 비즈니스에 문외한인 제 눈에도 네이버 싸이트는 초라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림 1] 초기 네이버 화면



저는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네이버 주식이 뜬다는 거죠?"

"응. 네이버 잘 할 거야."

"수많은 싸이트가 있는데 그 중 네이버가 왜 뜬다는 거죠?"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멤버들이 괜찮은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저는 안 산다고 했습니다. 회사의 성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멤버들"이라는 사실이 당시 저에게는 너무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혜였습니다. 상장되기 전 네이버 주식을 그 때 샀더라면, 지금 쯤 그 자산가치는 50억원 정도 할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제 삶은 많이 달라졌을까요?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때 주식을 샀더라도, 아마도 제 성격 상, 상장되자마자 1,2억원 정도 되었을 때 팔아치웠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계속 상승하는 네이버 주식을 보면서 "괜히 팔았다." 후회하며 살았을지도 모르지요.

두번째 기회는 2004년 MBA 1학년 시절이었습니다. MBA 1학년을 마치면, 학생들은 여름방학동안 섬머 인턴으로 회사에 3개월 정도 취업해서 일을 합니다. 섬머 인턴을 좋은 회사에서 하는 것은 졸업반 때 취업할 때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섬머 인턴 자리를 찾는 좝서치는 1학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비즈니스 경험이 전무한 상태로, 의사만 하다가 MBA 학교에 입학한 저로써는 서머 인턴 자리를 찾는 것에 너무 애를 먹었습니다. 가고 싶었던 컨설팅 회사들은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미국 시민권이 없으면 좀처럼 들어가기가 어려웠습니다. McKinsey, Bain, BCG, Lehman Brothers, Goldman Sachs Eli Lilly, Johnson & Johnson, P&G, Unilever, HCG Healthcare, Dupont 등등 신문으로만 보아왔던 회사들과 원없이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결국 오퍼는 받지 못하고 다 떨어졌습니다.

당시 한 30군데 정도 회사에 시도를 했다가 떨어진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많이 거절 당하는 경험을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상황이었습니다. 떨어지는 것도 속상했지만, 쪽팔리는 것도 큰 문제인 상황이었습니다. 의대 동기들이 지켜보고 있었고, 가족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반대하는 MBA 를 억지로 고집 피워서 왔습니다. 그냥 섬머 인턴도 못 하고 한국 들어가서 놀면서 여름방학 3개월을 보낸다는 것은 너무도 쪽팔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왠만한 사람이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가서 수주일에서 수개월 잠 못자고 처절하게 고민하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저에게 갑자기 생각이 난 곳은 WHO 였습니다. 거기서 돈 안받고라도 인턴을 하면 이력서에 올리기 좋을 것 같았습니다. 어차피 섬머 인턴이라는 것이 그 곳에 영원히 취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2학년 졸업반 때 취업할 때 유리한 내용을 이력서에 적기 위함입니다. 이력서에 World Health Organization 이라고 써 넣는 것은 누가 봐도 괜찮은 이력일 것 같았습니다. 당시 WHO 사무총장님은 한국인이자, 서울의대 선배이신 이종욱 박사님이셨습니다. 웹싸이트를 뒤져보니, 다행히 이종욱 박사님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메일을 썼습니다.

"나는 서울의대 출신입니다. 이종욱 박사님 후배입니다. 큰 뜻을 품고 비즈니스를 공부하러 MBA 학교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세계 보건 정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종욱 박사님을 항상 존경해왔습니다. 이번에 MBA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동안 WHO 에서 섬머 인턴을 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세계 보건 정책에 기여하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등등 마음에 없는 내용이라도 정성들여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메일 내용은 완전한 거짓은 아닙니다. 내 마음 한 편에는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신기하게도 하루가 지난 다음 "UN 산하기구인 WHO 사무총장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한글로 메일을 보냈는데 영어로 답이 왔습니다. 역시 WHO 사무총장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일개 학생에 쓴 메일에 답장을 보내시더군요.

"JiSoo, I'm very impressed with your passion."

음... 내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니, 시작은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적혀있었는데, 마지막 문장이 저를 급 실망시켰습니다.

"I recommend you to join WHO with your own effort."

'너 스스로의 힘으로 WHO 에 들어오길 조언한다. 윽... 안 도와주시겠다는 뜻이구만. 역시 UN 산하기구의 사무총장님 쯤 되니, 사적인 인맥 같은 것은 거절하시는 군.'
섭섭한 마음이 물밀듯 몰려왔습니다. 괜한 청탁을 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날 또 한번 좌절한 마음으로, MBA 학교에 같이 다니던 영욱 형님에게 전화해서 술마시며 위로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둘이 같이 퍼 마셨습니다.

제법 취한 상태로 다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종욱 박사님의 메일을 읽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다 보니 한 부분이 저의 눈길을 붙잡았습니다.

"CC: Yong Kim"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시면서, Yong Kim 이라는 분에게 참조를 넣은 것이었습니다. 이름을 보니 한국인이신 듯 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것 저것 가리면서 체면치레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거절당한다는 것이 한 5번 받아볼 때까지는 횟수에 비례해서 아픕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는 맺집이 생겨서 별로 안아픕니다. 10번이건 30번이건 거절 받는 것은 똑같습니다.

Yong Kim 이라는 분에게 "나 이런 사람인데, WHO 에서 인턴을 하고 싶다."고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보내고 나서 30분 정도 지났을까?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Yong Kim 이 직접 전화를 하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용이라고 합니다. 이종욱 박사님이 배지수 씨 WHO 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분은 매우 친화력 있는 분이셨습니다. 한시간 가량 통화를 했는데, WHO 에 오면 너에게 참 좋을 거라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습니다.
  •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여권은 짙은 녹색인데, 우리는 붉은 색의 UN 이 발행한 여권을 가지고 다닌다. 이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공항에서 세관을 거치지 않고 그냥 통과한다. 맘만 먹으면 밀수도 할 수 있다. 짭짤하다. 
  • UN 에서 근무하면 봉급은 미국 공무원 수준에 준해서 받는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세금을 안낸다. 그게 짭짤한 거다. 
엄청 친화력있으신 분이신 듯 했습니다. 이런말까지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농담을 하시면서, 지극히 사소한 내용들까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고 있을 무렵, 기존에 원서를 넣어두었던 삼성생명에서 인턴 오퍼가 왔습니다. 삼성생명과 WHO 두군데 좝 오퍼를 받고, 어디로 가는게 좋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조언도 구했습니다. WHO 가 이력서에 적기에 뽀대는 나지만, 기왕에 비즈니스 쪽으로 커리어를 가져가고 싶으면 회사 경험을 하는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결국 삼성생명에서 인턴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뒤,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학교 총장으로 김용박사가 부임하게 되었다는 기사를 들었습니다. 이름이 익숙해 찾아보니, WHO 에서 저에게 전화를 하셨던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전화받을 당시에는 그렇게 대단한 분이신지 몰랐었습니다. 그냥 WHO 에서 이종욱 박사님 밑에 계신 분이시겠거니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세계적인 엄청난 인물이셨습니다.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년이 지나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되셨습니다.

제가 그런 분하고 직접 통화를 했다니, 그리고 그 분이 저에게 그렇게 친밀하게 농담을 건네시면서 좝 오퍼를 하셨다니. 그런데 문제는 그 순간에 그게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몰랐다니.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그 때 김용 박사님의 제안을 받아 WHO 로 갔었더라면,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WHO 갔더라도 일을 잘 못해서 김용 박사님 눈밖에 나고, 일이 꼬였을 수도 있었겠지요.

세번째 기회는 제약회사 머크에서 근무할 때 입니다. 
당시 저는 대회협력이사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머크 한국 사장님은 마크 팀니라는 분이셨습니다. 영국인이고 호주에서 성장하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머크에 입사하기 전, Bain 이라는 컨설팅 회사에서 2년간 빡빡 굴르면서 일하는 법을 배웠고 한창 물이 올라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컨설팅 회사에서 배운 기술은 사장님 입장에서는 써먹기 참 좋은 기술입니다. 당시 사장님은 머크 전 세계를 총괄하는 회장님에게 한국 비즈니스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자료 준비를 컨설턴트 출신인 제가 하게 되었습니다.

머크는 직원들의 라이프가 참 좋은 회사입니다. 직원들은 5시가 되면 다 퇴근하고 회사는 텅 비게 됩니다. 반면 저는 컨설팅 회사에서 멘날 새벽 2시, 4시 퇴근하던 습관이 붙어 있기도 했고, 머크에 새로 취업한지 얼마안되는 상황에서 사장님 눈에 들어 인정받고 싶은 의욕이 철철 넘치던 때였습니다. 밤을 새워 가면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몸바쳐 일하는 직원이 사장님이 볼 때 이뻐 보일 수 밖에 없었을 듯 합니다. 돌이켜 보면 그 때 어떻게 그런 체력과 열정이 있었나 싶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못할 것 같습니다. 여하간 그렇게 몸바쳐 충성한 결과 사장님 눈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 취업하고 있기 보다는 내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습니다. 한 일년 정도 지내다가, 사표를 들고 사장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당시 사장님이 저에게 제안을 하셨습니다. 

"회사 생활이 재미가 없나? 돈이 필요하나? 이해는 한다. 근데 내가 제안을 하나 하자. 내가 곧 자리를 옮길 것이다. 아직 발령이 나기 전이니 말을 해 줄 수는 없지만, 같이 데리고 가겠다. 조금만 참아라. 그 곳은 너도 흥미를 느낄만한 곳일 것이고, 네 커리어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모호한 약속을 어떻게 믿어. 그 때 가봐야 아는거지."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 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난 시점에 마크 팀니 사장님은 일본 사장으로 부임을 했습니다. 일본 사장은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비즈니스의 거의 10배에 해당되는 큰 규모의 시장의 책임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나 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마크 팀니 사장님은 미국 사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머크 전 세계의 조직에서 명실공히 회장님 다음의 2인자가 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크게 될 분을 그 때 몰라봤습니다. 당시 좀 참고 있다가, 일본에 따라갔었더라면, 그리고 열심히 충성해서 심복이 되었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은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또 모르죠. 일본 따라갔는데, 일을 잘 못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을 수도 있죠. 

돌이켜 보니 제 인생에 세 번 큰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회를 그 순간에는 못 알아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항상 지나고 나서 "그 때가 기회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인생의 기회는 세번만 오는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온 기회를 잘 잡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두가지 후회를 하고 산다고 합니다. "어떤 선택의 상황에서 하지 않고 지나간 다음 그 때 그걸 했었어야 하는데." 라고 후회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하고 나서 괜히 했다." 라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많은 친구들은 자기가 사업을 하면 잘 할 것 같다, 좋은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도전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후회를 합니다.
"그 때 사업을 시작했었어야 하는데."
전자의 후회하는 사람들입니다. 전자의 후회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안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사업을 과감하게 시작하면, 처음의 생각대로 사업이 굴러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성공한 사업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일어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왜 내가 이 짓을 시작했지?"
처절하게 후회하기도 합니다.
후자의 후회하는 사람들은 도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도전을 하기 때문에 인생의 대박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반면 쪽박 찰 수도 있습니다. 스릴 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위에 제가 인생의 기회를 놓인 사례를 소개한 세가지 케이스는 "그 때 했었어야 하는데 괜히 안했다."라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을 영위하다 순간순간 "내가 왜 이 짓을 시작했지?" 생각이 듧니다. 골치가 아프고 머리가 새고, 주름이 늘어갑니다. 후자의 후회입니다. 그러나 저는 후자의 후회를 하는 제 모습이 전자의 후회를 하는 제 모습보다 좋습니다. 골치아픈 일이 산적해 있지만, 그래도 사업을 하는 저의 모습이 좋기 때문입니다.

기회는 수시로 나를 찾아오고, 또 떠나가곤 합니다. 지금도 제 앞에 기회들이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참 어려운 것은 지금 해야 할 의사결정들이 기회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냥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기회를 잡는 방법인 듯 합니다. 또 순간 순간 상황에서 과감한 리스크테이킹을 하는 것도 기회를 잡는 방법인 듯 합니다.



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30. Pricing: 미국에서 한국까지 10분만에 오는 비행기

"한 벤처회사는 한국에서 미국까지 10분만에 이동할 수 있는 운송수단을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을 항공기 회사에 팔려고 합니다. 이 기술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MBA 졸업반 시절 컨설팅 회사 입사 인터뷰를 하다가 받은 문제입니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기술은 항공사에게 팔려고 한다. 항공사는 이 기술을 사서 사업을 할 경우 얼마를 벌수 있을 것인가?'
항공사 입장에서 이 기술의 가치는 그들이 이 기술로 사업을 벌렸을 때 그 사업의 가치를 계산함으로써 추정이 가능할 듯 해 보였습니다. 

우선 항공사 입장에서 어느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10분만에 이동할 수 있다니, 고가의 상품으로 기획해도 될 듯 합니다. 현재 인천에서 LA 까지 일등석 항공권을 검색해 보니 500~700만원 정도 합니다. 이 가격의 두배를 받으면 될까요? 10시간을 10분으로 줄이는 시간 단축의 가치는 고객에게 얼마나 될까요?

항공사는 일반적으로 고객을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합니다. 이코노미 고객과 비즈니스 고객.
이코노미 고객은 보통 자기돈 내고 여행을 가는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비즈니스 고객은 회사의 비용으로 비즈니스 출장을 가는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이 상품의 경우, 일등석보다 더 고급스러운 상품입니다. 지루한 10여 시간을 10분으로 단축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일등석 타는 사람보다 한단계 더 높은 사람들이 이용할 듯 합니다. 아마도 최고위급 임원 또는 재벌 회장님 정도 될 듯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최고위급 임원을 출장 보낼 때,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 대신 10분만에 가는 새로운 운송수단을 태워주었을 때 얻는 이익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약 10시간의 여유시간의 가치는 얼마인가?

최고위급 임원들이 시간당 벌어들이는 회사의 수익을 가지고 계산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비행 시간을 단축시켜 줌으로써 이들이 회사에 돈을 더 벌어줄 수 있으므로 회사는 그 돈을 기꺼이 부담하려고 할 것입니다. 연봉이 10억인 임원의 하루 인건비는 연봉을 일년 중 주말을 뺀 260일로 나눠서 구할 수 있습니다(10억/260=약 380만원).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고 가정하면 한시간에 38만원 정도 될 듯 합니다.

그런데 이 가치는 임원의 인건비입니다. 임원 측면에서 본 가치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가치는 이 임원이 일년에 100억을 벌어들인다고 가정한다면, 시간당 가치는 380만원 정도로 올라갑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최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시간당 380만원이라고 하고, 10시간을 벌어주니, 3800만원 정도가 회사가 얻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단계 한단계 접근해 나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갔습니다.

이 케이스를 얘기하는 이유는 가격 결정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가격 결정 방식에는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1. 고객가치 기반 가격 결정 (Customer Value Based Pricing)

위의 케이스처럼 고객이 이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얻는 가치를 구해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을 고객 가치 기반 가격 결정 (Customer Value Based Pricing) 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고객 가치 기반 가격 결정은 가격의 최대값에 해당됩니다. 고객 가치 이상으로 가격을 책정한다면 고객은 이 상품을 살 수가 없습니다. 얻는 가치보다 나가는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고객 가치는 가치는 위 케이스에서 보는 것처럼 금전적인 가치일 수도 있고, 고객이 느끼는 행복감, 자랑할만한 마음 같은 비금전적 가치일 수도 있습니다.

해마다 세계적인 회사들의 브랜드 가치 순위가 발표되곤 합니다. 이런 브랜드 가치는 어떻게 산출할까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논리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래의 수식으로 가치평가를 했을 듯 합니다.

브랜드의 가치 = 브랜드를 붙이고 팔 수 있는 수익 총액 - 브랜드 없이 팔 수 있는 수익 총액

[그림 1] 브랜드 가치 순위

이런 브랜드 가치는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산출되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삼다수가 500원에 팔리는데, 에비앙이 2,000원에 팔리는 것역시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책정된 예입니다. 물이 다 똑같은 물인데 고객 가치가 무슨 차이가 나냐구요? 고객 가치는 상품 본질에만 있는 것이아니라, 다양한 고객 체험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에비앙을 마시는 사람은 "뭔가 유럽인이 된 듯한 느낌"을 가진다던가, "자신이 돈 많다는 것을 과시"한다는 등의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항암제가 수천만원인 반면, 고혈압약이 몇십원에서 몇백원 수준으로 가격 책정이 되어 있는 것은 제조원가의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고객이 느끼는 가치의 차이 때문이고, 이 때문에 고객의 지불 의사가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고객 가치를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2. 원가 기반 가격 결정 (Cost Based Pricing)

2003년 경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아파트 원가 공개제도가 시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 논란 끝에 결국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시행되지 못한 이유로,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격 규제나 통제는 부적절하다는 점, 이로 인해 신규주택의 공급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 값싼 자재로 인해 아파트의 품질이 떨어지는 점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원가를 공개한다면, 기업 입장에서 가격을 공개된 원가에서 10% 이상 높게 책정할 수 없게 됩니다. 이는 원가를 기반으로 가격 결정을 하겠다는 대표적 시도입니다.

보험 회사에서 보험상품의 가격을 정할 때도 원가를 기반으로 합니다. 각 보험 상품은 그 나름대로의 비용 구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보험을 생각해 봅시다. 상품을 팔면, 영업사원에게 인센티브를 주어야 합니다. 보험회사 건물 속에 있는 수많은 직원들 월급도 주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오버헤드 비용도 나갑니다. 이를 운영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 상품의 목적에 맞게 가입자에게 돌려주어야 하는 비용도 있습니다. 암보험의 경우 보험 가입자 중 암이 발생할 경우 치료비를 지급해야 합니다. 이 비용은 "암 발생율 x 암 발생시 지급하는 금액" 이 됩니다. 이를 사고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회사는 암발생률만으로 보혐료를 산출하지 않습니다. 보험료를 미리 받기 때문에 여기에 발생하는 이자도 계산을 합니다. 또 돈을 받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산 운용을 합니다. 이 때 비용이 들어갑니다. 이를 재무 비용이라고 합니다.

보험회사는 이렇게 운용비용, 사고비용, 재무비용을 합한 비용의 총합을 구한다음 거기에 이익율을 더해서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하고 상품 가격을 허가받습니다. 

병원의 의료보험수가는 대표적인 원가 기반 가격 결정의 예입니다. 문제는 현재 수가는 원가의 70% 에 맞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원가보다 적게 수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좀 황당한 상황입니다.

일반적으로 원가 기반 가격 결정은 가격의 최소값에 해당됩니다. 원가 이하로 가격이 책정되면 기업은 이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습니다. 손해를 보면서 사업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병원의 경우 원가 이하의 가격을 받기 때문에, 의료의 왜곡 현상이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이 미용 시장, 비급여 시장이 기형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3. 경쟁 기반 가격 결정 (Market Pricing)

가격 결정에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경쟁자의 가격 결정입니다. 내가 고객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해서 높게 책정했는데, 후발 주자가 드러와서 가격을 내려 버리면 나 역시 따라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경쟁 기반 가격 결정의 대표적인 사례는 경매입니다. 경매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한가지는 "가치가 정해진" 제품의 경매이고, 또 한가지는 "가치가 정해지지 않은" 제품의 경매입니다.

예를 들어 동해안에 유전이 발견되었다고 합시다. 정부는 시추권을 경매를 붙입니다. 이 경우는 가치 평가가 가능한 경매입니다. 비록 유전에 원유가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비록 알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원유가 들어있는 양은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경매에 참여하는 회사들 입장에서는 원유가 과연 얼마나 들어있을까 모르는 상황에서 경매를 하게 됩니다. 경매는 가격을 높게 부르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치(원유량)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격을 높게 부를수록 이익이 줄어들게 됩니다. 자칫 하다가는 실제 가치보다 높게 가격을 부를 경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를 "승자의 저주 (Winner's curse)" 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과열된 M&A 의 경우, 파는 쪽 회사의 주가가 올라가고, 사는 쪽 회사의 주가가 떨어집니다. 승자의 저주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얼마전 한전 부지를 현대차 그룹이 10조 5500억원에 낙찰을 받았습니다. 이 때 많은 언론에서 승자의 저주라고 보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승자의 저주인지 아닌지는 현대차 그룹이 그 부지를 얼마나 가치있게 활용하는가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승엽 선수의 60호 홈런을 친 야구공이 경매에 나왔다고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 유전의 경우 매장된 원유량으로 가치 평가가 가능하고, 한전 부지의 경우 그 부지를 통해서 사업을 할 때 버는 돈으로 가치 평가가 가능합니다. 이승엽 홈런볼은 그런식으로 객관적인 가치를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 야구공을 가지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경매에서 어떤 사람이 1천 만원에 샀다고 하면 그게 가치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듬해 그 공을 2천 만원에 샀다고 하면 가치는 올라갑니다. 2천만원에 산 사람이 다시 팔려고 했더니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더라 하면 가치는 다시 떨어지게 됩니다.

[그림 2] 김환기 화백의 "새와 달"















미술품이 이런 경우입니다. 김환기 선생님의 "새와 달" 이라는 그림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시작 가격 4억으로 나왔습니다. 경매가 진행되면서 과열이 되었는지, 7억에 낙찰되었습니다. 이 경우 너무 비싸게 샀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년이 지난 지금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7억에 낙찰된 그림."이라는 명성과 함께, "김환기 선생님의 그림은 7억 짜리"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치평가가 어려운 상품의 경우 승자의 저주가 상대적으로 적용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객가치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최대치를 형성합니다. 원가 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최소치를 형성합니다. 만일 "원가 기반 결정 가격"이 "고객 가치 기반 가격"보다 높다면, 이는 상품성이 없는 상품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경쟁 기반으로 결정된 가격은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가격 결정을 할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비급여 상품이 유일합니다. 이 때 그냥 비싸게 받는 것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싸게 받아서 고객 수를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위의 논리를 생각해 보면서, 여러가지를 고민하면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원가 이하의 수가 체계는 하루 빨리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듯 합니다. 속상해서 쓴 글이 좀 장황해졌습니다.





2014년 11월 27일 목요일

29. 상호 이기는 협상

[Case 1]

대학병원 의사인 철수는 열흘 후 미국으로 연수를 떠납니다. 그동안 3년간 탔던 쏘나타 자동차를 처분해야 합니다. SK 엔카를 보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어본 결과, 잘 하면 1200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딜러에게 물어보니 800만원밖에 안쳐준다고 해서, 직접 인터넷에 올려서 팔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으로 가야 할 날이 10일밖에 안남았으니, 일주일 정도 기다리다 적당한 매수자가 안나타나면 800만원에 딜러에게 넘기려는 복안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용석이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K 기업 연구소로 취업을 해서 막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용석이는 자동차 구매 예산으로 1,000만원까지는 쓸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철수를 만나 얘기해 본 결과, 철수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흘이라는 시간적 압박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일단 700만원으로 후려쳐서 가격을 불렀습니다.

[그림 1]



이 경우 철수는 초기에 1200만원을 불렀고, 최후의 보루는 800만원입니다. 철수는 800만원에서 1200만원의 가격 밴드가 형성이 됩니다. 
한편 용석이는 초기에 700만원을 불렀고, 최후의 보루는 1000만원입니다. 용석이의 경우 7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가격 밴드가 형성이 됩니다.
판매자와 구매자 가격 밴드중 겹치는 영역, 여기서는 8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를 ZOPA (Zone of Positive Agreement) 라고 하며, 이 사이 어느 지점의 가격에서 협상이 타결될 것입니다. 
물론 밀당을 통해서 누가 더 배짱과 협상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유리한 가격으로 협상을 결론지을 것입니다.

[Case 2]

올해 56세인 김사장은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사장은 부인과 함께 요트를 사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젊을 때 부터의 꿈입니다. 부인과 결혼할 때 부터 약속을 했었습니다. 나이가 60이 넘으면 힘이 없어 세계일주를 못 할 것 같다는 걱정도 듧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주유소를 팔고, 요트를 사서 2년 동안 세계일주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일자리를 얻어서 여생을 지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보에 밝은 김사장은 최근 인근에 주유소가 새로 들어온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주유소를 새로 지으려면 8억정도 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김사장은 이 주유소를 7억에 넘기려고 합니다. 사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괜찮은 가격인 듯 합니다. 7억을 받아서 5억짜리 요트를 사고, 1억은 세계일주를 하면서 쓰고, 나머지 1억은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와서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생활을 하기 위한 자금입니다.

한편, 이과장은 SK 정유업체 직원입니다. 김사장이 있는 지역에 주유소 하나를 확보하라는 본사의 명령을 받고 김사장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과장은 회사로 부터 6억 정도로 주유소를 확보하라는 지침을 받았습니다. 사실 시가는 더 나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수익율이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돈을 지불하는 것은 안된다고 내부 결정이 나 있는 상태입니다. 아마도 재무팀에서 분석한 결과 그 이상 돈을 지불하면 목표 수익율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번 가을은 인사 시기입니다. 이과장은 승진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 건을 성사시키면 회사로부터 능력있는 직원이라고 인정을 받고, 승진이 보장이 되는 상황입니다.

[그림 2]



이 경우는 김사장의 가격밴드의 최소값은 7억입니다. 그 이하로는 팔 생각이 없습니다. 반면 이과장의 가격 밴드는의 최대값은 6억입니다. 이 이상을 지불할 권한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ZOPA 가 형성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협상이 결렬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돌아가던 이과장은 자꾸 미련이 남았습니다. 그냥 돌아가면 사장님은 자기를 무능하다고 평가할 것 같았습니다. 이번 승진에 누락 될 수도 있습니다. 이과장은 다시 차를 돌렸습니다. 김사장님과 소주 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소주 한잔을 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서로 속 사정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김사장이 왜 7억을 고집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7억을 받아서, 그 중 5억은 요트를 사고, 1억은 세계일주를 하고, 나머지 1억은 세계일주 이후에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필요한 자금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주유소를 가장 잘 운영할 사람은 김사장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과장은 새로운 제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주유소 인수가격을 6억으로 하고, 대신 세계일주 후에 김사장님을 주유소 관리자로 취직시켜주는 조건은 어떨까 제안했습니다. 김사장님 입장에서는 세계 일주 이후에 일자리를 확보해서 좋고, 회사 입장에서는 6억으로 주유소를 확보하고, 또 유능한 관리자 한 사람까지 확보하는 셈이었습니다. 

사례 1과 같이 한개의 선상에서 밀고 당기며 협상을 진행하는 것을 "배분적 협상"이라고 합니다. 한 쪽이 이익을 보면 그만큼 다른 쪽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결국 한쪽이 보는 이익과 다른 쪽이 보는 손해를 합하면 0 이 된다고 해서 "Zero Sum 게임"이라고 합니다.

사례 2와 같이 겉으로 보이는 가격 이외에 다른 숨어있는 가치를 찾아내서 협상의 폭을 넓히는 방식을 "통합적 협상"이라고 합니다. 통합적 협상의 경우 양쪽 다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Win-Win 게임" 이라고 합니다.

[그림 3] 배분적 협상과 통합적 협상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협상은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배분적 협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서로 대화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대부분이 "통합적 협상"으로 바뀝니다. 통합적 협상을 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풀기 어려워 보이던 협상도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통합적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Position 과 Interest 라는 개념을 알면 도움이 됩니다. Position 은 겉보기에 원하는 입장입니다. Interest 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진짜 원하는 속마음입니다.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은 이집트령이었던 시나위 반도를 점령했습니다. 평화협상을 하면서 이집트는 100% 반환을 하라고 했고, 이스라엘은 일부만 반환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때 양쪽의 입장을 Position 이라고 합니다. 표면적으로 양 당사자가 원하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림 4] 6일전쟁



그런데 100% 반환이냐 일부 반환이냐 문제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이집트 정부는 "자존심"이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영토를 빼앗긴 상황에서 정부가 빼앗긴 영토의 일부만 반환 받고 평화 협상을 하고 있다면 국민들이 정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국민들의 지지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상황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시나위 반도를 얼마나 차지하는가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시나위 반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아랍 형제국이라고 일컫는 아랍 동맹국들과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가지고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차라리 시나위 반도를 돌려주고 평화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근데 이집트와 국경을 맞대고 있기는 좀 부담스러운 상태입니다.

결국 이 상황에서 Interest 는 이집트의 경우 "자존심", 이스라엘의 경우 "안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협상은 이집트의 경우 자존심을 찾고 이스라엘은 안전을 확보하는 타협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100% 반환하되 완충지대를 설정하고 UN 군이 한시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쪽으로 타협을 하게 되었습니다. Position 과 Interest 를 잘 구분하고, 협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윈윈 협상으로 결론날 수 있었던 사례입니다. 

[그림 5] 시나이반도 반환 협상



이런 훌륭한 협상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 상 가장 훌륭한 협상가는 고려의 서희 장군입니다. 서희 장군은 거란의 소손녕 장군이 침입했을 때 홀몸으로 적진에 들어가 담판을 했습니다. 담판끝에 전쟁 없이 거란군이 퇴각하도록 하고, 강동 6주를 얻었습니다.  

다음 내용은 우리 아이들이 보는 위인전기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홀몸으로 적진으로 들어간 서희 장군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거란군을 이끄는 소손녕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네 이 놈, 우리의 국호가 왜 고려인줄 아느냐? 고구려의 대를 이었다는 의미에서 고려라 이름 지은 것이다. 
이렇듯 우리 선조이신 고구려인들이 말을 타고 달리던 기상이 남아 있는 이 땅을 너희들이 어찌 감히 범접하느냐?”
이 말에 거란군 전체가 겁을 먹고 군사를 물리어 강동 6주를 힘들이지 않고 획득했다.

[그림 6] 서희 장군과 강동6주


제가 40년 인생을 살아보았는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말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뭔가 다른 협상의 내용이 있었겠지요. 

거란의 소손녕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명분은 "고려의 왕이 백성을 잘 다스리지 못해 하늘을 대신해 천벌을 내리러 왔다." 입니다. 이는 Position 입니다.  

그런데 거란의 속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거란은 중국 대륙의 송나라를 정벌할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고려는 송나라를 사대 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거란 입장에서 송을 정벌하려 하니 등 뒤의 고려가 거슬렸습니다. 마치 지금의 한미 합동 방어 조약과 비슷합니다. 송과 고려 둘 중 어느 하나가 전쟁이 날 경우 자동적으로 동맹국이 전쟁에 참여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송을 정벌 하기 전에 고려를 먼저 길들여놓고자 고려에 침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Interest 입니다.

서희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소손녕에게 찾아가, "너희가 송을 정벌할 때 우리는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가 제안 (Nibbling)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너희에게는 사실 그리 관심 없는 땅 강동 6주를 고려에 달라. 그렇게 하면 내가 돌아가서 친송파 대신들을 설득할 명분이 생긴다." 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추가 제안 (Nibbling)도 협상에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비싼 양복 하나 사면서 넥타이 하나 끼워달라"고 하거나, "골프채를 사면서 골프공을 끼워달라."고 요구하는 식입니다. 

[그림 7] 서희장군의 강동6주 협상




병원을 운영하면서 협상을 하는 상황이 종종 있습니다. 건물주와도 협상을 하고, 직원들과도 협상을 하고, 인테리어 업자들과도 협상을 하게 됩니다. 저의 협상 상대들도 이 글을 읽을 것이기 때문에 더 자세히 얘기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냥 위의 협상 관련 이론들을 숙지하시고, 여러 상황에 적용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8. 연평도 포격 사건

2010년 11월 어느날 북한군이 쏜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군은 용감하게 대응 사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이 윗선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상황을 전달받은 청와대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단호한 대응을 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를 잘하라"

이 말이 언론에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말이지?"

이 사건에 대해 훗날 잘했다, 못했다 많은 평이 있었습니다. 혹자는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라는 지시 때문에 북한을 더 확실하게 응징하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저는 이런 일에 대해서 잘했다 못했다 평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쩜 그리 똑똑할까 신기합니다. 제가 청와대에 있는 최고의사결정자였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을 해 보니, 비슷하게 얘기했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인 듯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높은 자리에 못올라가는가 봅니다. 

혹자는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의사결정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연평도에 있는 대대장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공격에 대해서 그만큼만 공격할 것인지, 아니면 더 세게 공격할 것인지 의사결정을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또한 정말 어려운 의사결정인 듯 합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는 의사결정을 대대장이 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 1] 로마군의 전쟁 대형




로마군의 전쟁 모습입니다. 그림1에서 보듯이 로마군은 백명 단위로 이루어진 백인대 (Centrio), 6개의 백인대로 이루어진 대대 (Cohort), 10개의 대대로 이루어진 군단 (Legion) 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백인대장 (백부장)은 백인대의 무리 속에 위치해있을 것이고, 대대장은 6개의 백인대 뒤에서 지휘하고 있을 것입니다. 군단장은 제일 뒤에서 전장 전체를 지휘하겠지요.

[그림 2] 로마군의 적과 대치한 전장
















멘 앞에 서 있는 병사들이 적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적이 공격을 해 옵니다. 백인대장은 뒤로 전달해서 대대장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대대장은 뒤로 전달해서 군단장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군단장은 "공격 개시"를 외치고, 그 명령은 다시 대대장을 통해서 백인대장에게 하달됩니다. 보고라인이 올라가고, 다시 명령라인이 내려오는 동안 멘 앞의 병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해보고, 죽게 될 것입니다. 멍청한 상황입니다. 당시 세계 최상의 로마군이 이렇게 멍청한 시스템을 운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전장의 상황은 전장 1미터 앞 병사가 제일 잘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연평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군사학에 문외한인 제가 뭐라고 할 수준은 아니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쉽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종종 의사결정의 권한을 고객과 대면하는 곳에 위치시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약회사의 경우 기존에는 일반 영업사원이 의사들을 방문하여 만나곤 했습니다. 기존에 영업사원들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세일즈멘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영업사원들에게 약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키지만, 제 아무리 교육을 시켜봐도 영업사원들이 의사만큼 약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객인 의사보다 상품에 대해 지식이 짧은 상황이니, 상품에 대한 전문적 지식 전달 보다는 리베이트 같은데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점차적으로 제약회사들은 의사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의사들에게 Medical Adviser 라는 직책을 주고, 고객 의사들을 만나게 하고 있습니다. 직위는 Medical Adviser 라고 하지만, 사실상 영업사원의 업무를 의사들이 대체하는 쪽으로 움직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고객의 질문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이 현장에서 고객을 응대하게 함으로써 고객의 니즈를 보다 수준높게 대처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은행들의콜센터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기존에 콜센터는 고객이 먼저 전화를 걸어 문의를 하고, 콜센터는 그 문의에 대처하는 수동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최근 콜센터들은 적극적인 영업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전화를 먼저 하지 않아도, 콜센터에서 직접 고객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보험 상품, 대출 상품 등을 권유합니다. 콜센터에 단순 전화 받는 직원이 아니라, 보험 전문가, 대출 전문가들이 배치됩니다.

시도때도 없이 걸려와서 "대출 안필요하시냐?" 물어보는 은행의 전화들은 이런 움직임 때문입니다. 이런 전화에 누가 넘어갈까 싶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법입니다. 돈에 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저 역시 이번달 직원들 월급 못 줄까봐 전전긍긍할 때 이런 전화를 받고 반가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가 안산다고 해서 모든 고객이 다 나 같은 것은 아닙니다. 고객은 정말 다양한 부류가 있습니다. 은행들은 이런 시스템 도입으로 수익을 많이 올린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심하자 최근 정부에서는 규제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림 3] 병원의 인포 데스크



최근 동아일보 착한병원 기사에서 한 병원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 수간호사급이 앉아있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포데스크에는 보통 고졸의 여직원이 앉아있게 마련입니다. 고객이 인포데스크에 문의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정형외과 어디로 가면 되냐?" 그 정도 입니다. 병원의 지리를 알려주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병원은 수간호사 급의 수준높은 의료전문가가 인포데스크에 앉아있어습니다. 착해서가 아닙니다. 고객의 니즈를 최전선에서 직접 응대하겠다는 엄청난 철학이 담겨있는 경영 의사결정인 듯 합니다.



2014년 11월 23일 일요일

27. [Network Effect] 카카오톡으로 배우는 입소문 마케팅

[그림 1] 모바일 메신저 엡


카카오톡, 다음 마이피플, 네이버 라인, 왓츠앱, 텔레그램 중 가장 기능이 우수한 모바일 메신저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시장만 놓고 볼 때, 수많은 모바엘 메신저  앱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다가 어느순간부터 카카오톡이 압도적으로 시장을 차지한 듯 합니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카카오톡 기능이 다른 앱들에 비해 우수해서 일까요? 별로 그래 보이지 않습니다. 

2011년 무렵, 다음 마이피플은 TV 광고를 했습니다. 이 때 거금을 들여,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 모델인 소녀시대를 기용했습니다. 당시 다음 마이피플의 광고 메시지는 두가지였습니다.
1. 음성 인식이 가능하다. 
2. PC버전이 있어, 스마트폰 뿐 아니라 데스크탑에서도 가동이 된다.

2011년 당시로써는 위의 두가지 기능은 카카오톡에서는 구현이 안되는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구현 됩니다.)

소녀시대 멤버들은 TV에 나와서, "말로 하자. 제발!", "톡인데 왜 말을 못해", "카카오는 말을 못해" 라고 하면서 카카오톡의 음성 인식 기능이 없음을 대놓고 까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2] 또한 스마트폰으로 타이핑을 하려면 속도가 느린데 비하여, 컴퓨터 자판으로 빠르게 채팅이 가능하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림 3]
[그림 2] 다음 마이피플 광고: "카카오는 말을 못해" 편



[그림 3] 다음 마이피플 광고: "PC 까지 되니깐 수다가 빨라진다" 편


당시 저는 광고를 보면서 판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이피플이 공격적으로 나오는군. 카카오톡 빨리 정신차리고 새로운 기능을 개발 안하면 금방 뒤집히겠구나."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여전히 카카오톡은 압도적으로 승기를 쥐고 있습니다. 2012년 12월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는 이용량의 48%를 카카오톡이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품들의 경쟁상황에서, 반드시 기능이 좋아야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당시 카카오톡이 다음의 마이피플보다 기능에서 뒤짐에도 불구하고 경쟁에서 이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광고를 본 저는 제 데스크탑 컴퓨터에 마이피플 PC버전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결과는 답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이피플을 설치는 했지만 확인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카카오톡은 다음피플이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기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쓴다." 입니다.

이를 네트워크 효과(Network Effect)라고 합니다. 미국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Harvey Leibenstein)이 소개한 개념입니다. "어떤 상품에 대한 수요가 형성되면,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영향을 끼친다." 는 것입니다. 다시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사용자들이 늘어날수록 제품의 가치가 향상되고, 제품의 가치가 향상될 수록 사용자들은 더 늘어나는 식의 양의 되먹임 (positive feedback) 의 효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규모의 경제 이론에서 두가지를 얘기합니다.
공급 측면의 규모의 경제는 "많이 생산하는 자가 이긴다." 입니다. 보통 많이 생산하면 원가가 떨어져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수요 측면에서의 규모의 경제는 "고객이 선택할 때 큰 놈을 선택하니, 큰놈이 더 성장한다." 입니다.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네트워크 효과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전화나 팩시밀리가 있습니다. 팩시밀리가 처음 개발 되어 가게에 처음 전시되었을 때, 제일 먼저 샵에 가서 팩시밀리를 산 사람은 과연 어떤 생각으로 샀을까요? 자기 한 명만 팩시밀리를 가지고 있다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제품입니다. 아마 그 사람은 두 대를 샀을 것입니다. 팩시밀리는 사용자가 많아질 때 비로소 가치가 있는 제품입니다.


유선전화와 워키토키를 비교해 봅시다. 유선전화는 집에서 고정된 자리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워키토키는 돌아다니면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워키토키는 현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워키토키는 두명만 사용 가능했지만, 유선전화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네트워크효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능이 열등한 재화가 기능이 우수한 재화를 이기고 시장을 장악한 사례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디오 시장에서 VHS 와 Beta 입니다. 소니의 Beta 가 훨씬 우수한 제품이었으나, VHS 가 컨텐츠를 만드는 업체를 많이 확보해서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초기 컴퓨터 시장도 비슷한 예입니다. Apple 의 매킨토시 등이 기능은 우수했지만, Window 와 Intel 이 합작한 Wintel PC 가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수많은 모바일 메신저 앱 중에서 카카오톡이 이긴 이유는 임계점에 먼저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림 4] 각 모바일 메신저의 하루 메시지 전송량

그림 4 에서 왼쪽 회색 부분은 아직 아무도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시장 초기 상황입니다. 이 때에는 업체들이 서로 엎치락 뒤치락 치열하게 싸우면서 순위 경쟁을 하게 됩니다. 오른쪽 노란색 부분은 어느 한 업체가 임계점에 도달한 이후 입니다. 임계점에 도달한 업체는 압도적 우위를 장악하며 시장을 선도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카카오톡이 이에 해당됩니다.

네트워크의 형태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림 5] 소비자 들끼리의 네트워크


그림 5의 경우는 소비자들끼리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형태입니다. 전화, 팩시밀리, 모바일 메신저 등이 이에 해당이 됩니다. 이런 네트워크를 잘 살펴보면 소비자 중에 어떤 사람은 연결고리가 많은 반면 어떤 소비자는 연결고리가 적습니다. 연결 고리가 많은 소비자의 경우 영향력이 큰 소비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마당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원을 운영할 때 입소문을 많이 내는 학부모들이 있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환자들은 계속해서 환자들을 소개해서 환자들을 몰고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6] 회사와 소비자 간의 네트워크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엔진의 경우가 이런 형태에 해당됩니다.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는 않습니다. 검색 엔진 회사와 연결 고리를 맺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네트워크 효과는 적용됩니다. 검색엔진의 주 수입원은 광고주들이 내는 광고 비용입니다. 검색엔진의 사용자 수가 많을 경우 광고주들이 가치를 느끼는 검색엔진이 됩니다.

이런 상황을 병원 네트워크에 적용을 해 봅시다. 우리나라에 한때 네트워크 병원들이 한창 활성화 된 적이 있습니다. 피부과에서는 고운세상피부과, 리더스 피부고, 차앤박 피부과 등이 있습니다. 치과에서는 예치과가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분위기가 좀 수그러들은 것 같습니다.

[그림 7] 병원 네트워크의 형태


병원 네트워크는 그림 7과 같은 형태를 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비자 간에 네트워크 (검은색 줄)보다는 공급자인 병원들 사이의 네트워크(붉은색 줄)가 강한 형태입니다.

병원이 네트워크로 운영되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1. 브랜드를 공유함으로써 광고비를 낮출 수 있다.
2. 공동 구매를 함으로써 구매 단가를 낮출 수 있다.
3. 경영 노하우를 공유함으로써 최적의 경영 방법을 도모할 수 있다.
4. 환자의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한 병원에 갔던 환자가 다른 지역의 병원에 가도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정도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보니 네트워크 효과의 본질인 소비자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기는 어려운 듯 합니다. 공급자 측면에서의 규모의 경제는 확보할 수 있으나 수요자 측면에서의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내기 어려워보입니다.
4번 항목, 환자의 정보 공유를 통해 치료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측면은 환자의 정보 유출 측면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시행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치료의 연속성이라는 것이 1차 병원에서 2차, 3차의 상급병원으로 갔을 때 도움이 될 뿐, 1차기관들끼리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인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병원에서 네트워크효과를 적용해 본다면 그림 5와 같은 소비자 끼리의 네트워크를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제가 소아정신과 갓 개원했을 때는 홍보 노력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를 남과 다르게 차별화해서 꾸미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한 병원 홍보가 아니라 포털 싸이트처럼 만들고, 꾸준히 칼럼을 써서 올리는 등  환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이 홈페이지를 검색엔진에 노출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또 인근 학교나 학원들을 돌아다니며 외부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교양강좌를 열어 아이들 양육 방법을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병원 홍보를 안해도 환자들이 꾸준히 오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점점 홍보비가 줄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부터는 대외 홍보보다는 오는 환자들에게 광고하는 내부 홍보에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어차피 신환이 대기하는 시간이 2주 이상 걸리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신규 유입 환자가 더 온다고 하더라도 대기 시간만 길어질 뿐 진료를 할 수 있는 capacity 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입소문으로 오는 환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부터 외부 홍보보다는 그냥 환자에게 열심히 성심껏 진료하는 것만으로 병원이 돌아가게 됩니다. 임계점을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거쳐간 환자들이 진료 서비스에 만족하고,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면 주변에 소개를 해 주기 때문입니다. 임계점을 넘기고 나면 병원 운영이 쉬워집니다.

여기서 입소문을 내기 위한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1. 바이럴 마케팅 업자들은 도움이 안된다. 멀리하라.
- 바이럴 마케팅 업자들은 파워 블로거들을 활용합니다. 일반 소비자들도 파워 블로거들이 상업적으로 쓰는 글은 금방 알아봅니다. 그들이 쓰는 글 보다는 원장이 직접 진솔되게 쓰는 글이 훨씬 강력합니다.  

2.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고, 명확한 병원 특성을 나타내는 메시지를 만들어라.
- 고객 중 입소문을 내는 영향력이 큰 마당발들이 있다. 우리편인 그들을 활용하려면 그들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한다. 그들이 소문을 내도 "그냥 좋은 병원"이라고 전달하기 보다는 전달할 수 있는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3. 누군가 소개를 해 준 고객은 기억을 하고 아는척을 하라. 의사만 그렇게 하기 보다는 직원들도 환자를 기억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4. 환자들에게 진료 이외의 인간적 얘기를 하는 것도 좋다.
- 진료가 한산할 때 환자들에게 물어보자. "왜 수많은 다른 병원들 대신 우리 병원에 왔는가?" 그들은 우리 병원의 강점에 대해서 얘기해준다. 고객은 우리병원의 강점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서 더 강력하게 세뇌된다.

5. 가족들도 활용하자. 가족들은 가장 중요한 입소문 노드들이다. 이들이 전달하기 좋은 메시지를 만들어주자.
- 가족은 가장 중요한 입소문 메이커들이다. 그들은 우리 병원에 대해서 이미 호의적이다. 그들이 전할 수 있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만들어주자.

6. 업체에게 맡긴 내용 보다는 직접 쓴 글이 도움이 된다.
- 업자가 쓴 글은 영혼이 없는 글이다. 서툴더라도 원장이 직접 글을 쓰고 이를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려 보자.

7. 홈페이지를 상호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라.
- 홈페이지 게시판에 병원에 대한 불만 내용이 올라올 수 있다. 이를 그냥 지우지 말고, 그에 대해 어떤식으로 해결했다, 또는 당장은 해결하지 못하지만 어떤 식으로 반영하겠다는 답글을 달아주어라. 다른 사람들이 보면 고객과 매우 밀접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처럼 보인다.
- 답글을 빨리 빨리 달아라. 이를 위해선 직원 중 한 사람에게 매일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도록 책임을 주라.


 

26. [위기관리] 마키아벨리 선제공격하기

기업이나 병원을 경영하다 보면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서 좀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미국 듀크대학 MBA 과정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었을 무렵인 2005년 가을, 듀크대학병원의 고위 경영자로부터 "병원의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듀크대학병원은 미국 내 탑3 안에 들어가는 우수한 병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큰 사고가 하나 있습니다. 한 아이의 간 이식을 하는데, 혈액의 ABO type 을 잘 못 맞춰 아이가 죽게 되었습니다.

사실 병원에 있어보면, 병원이란 곳이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를 4중, 5중으로 겹겹이 만들어 놓은 곳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의료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이 고도로 발달된 곳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의료사고가 터지는 경우를 보면, 참 억세게 운이 없는지 확률이 만분의 1, 10만분의 1인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듀크대학병원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초기에 환자의 ABO type 을 검사하고, 장기 기증자의 ABO type 도 검사하고, 이식 전에 한번 더 더블체크를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있었지만, 귀신에 씌었는지 이런 단계들이 제대로 작동을 못한 것입니다. 

개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듀크대학병원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대처를 잘 했다고 평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일단 자체 조사를 해서 병원의 실수인 것이 확인이 되자, 병원 경영진 10여명이 다같이 언론에 나와서 사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사고가 안나도록 여러가지 걸름장치를 만들었음에도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추후 방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조치들을 만들고 이를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영어로 강의를 들은 탓에, 그리고 오래된 탓에 자세한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전반적으로 진솔하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여론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유가족들이 듀크대학병원측의 조치에 감사한다는 내용으로 언론 인터뷰를 해 주었고, 세월이 지난 지금도 듀크대학병원은 여전히 미국내 탑 3의 병원으로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사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두산의 페놀 방류사건입니다.
기존에 두산은 OB 맥주, 코카콜라, 코닥 필름, 켄터키 치킨 등 국민들로 부터 사랑받는 사업들을 하고 있었고,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두산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991년 3월 구미시에 있던 두산전자의 페놀 원액 저장 태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30톤의 페놀 원액이 대구 상수원을 오염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에 언론들은 두산이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것이 비용이 많이 드니, 일부러 강에 흘려보냈다는 식으로 보도를 했고, 자칫하면 악덕기업 이미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두산은 반박 자료를 냈습니다. 
"페놀 찌꺼기는 페놀 원료를 녹이는데 재활용되므로 일부러 버릴 이유가 없다. 다만 뜻하지 않게 흘러나갔는데, 그 원액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두산의 메시지 내용에 수긍하기 보다는 반발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두산 경영진은 이로써 환경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게 되었고, 제도적 기준치의 절반의 기준을 회사 내부의 기준으로 설정하고 환경 오염을 줄이는데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의대 2학년 시절, 환경 의학을 공부할 때가 있었는데, 두산 오비맥주 공장을 견학을 하면서, 두산의 폐기물 시설을 견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이론을 좀 찾아보았습니다.

1. 위기 관리 위원회를 구성하라.

[그림 1] 위기관리 위원회

조속하게 위기 관리 위원회를 구축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경우 CEO 가 일일이 정보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 보다 위기 관리 팀, 관련 이슈 담당 책임자, 홍보 담당자를 따로 두어 일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CEO 가 일일이 언론의 부정적 기사를 읽다 보면,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어 냉철한 판단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또는 기사를 읽기 싫다고 외면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둘 다 위험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겠지요.
홍보 담당자는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이슈를 분류하여 위기관리팀과 이슈담당 책임자에게 보고하고, 수시로 모여 각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지 의사결정을 하도록 합니다. 관련 이슈 담당자 역시 이슈 하나 하나에 대해서 홍보 전문가와 위기관리팀과 상의해서 다양한 입장을 반영한 의견을 구하고, 합의된 의사결정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겠지요. 위기 관리 팀은 이슈 책임자와 홍보담당자와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의사결정을 하도록 도와주고, 이를 CEO 에게 보고하도록 합니다. 
수시로 모이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가상의 회의장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카카오톡 단체 채팅 방을 열고 여기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듯 합니다.

2. Go Decision 은 조속하게 내려라.

의사결정 중 가장 나쁜 의사결정은 "상황을 지켜보자." 입니다.
위기 상황을 맞게 되면 쉽게 드는 생각은 "신중해야 한다.", "섣부른 판단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 시킬 수 있다." 등 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상황을 지켜보자며 의사 결정을 늦추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판단을 하게 되는 근본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Go decision 을 하기 위한 의사결정 프레임으로 "마키아벨리의 진실말하기"를 생각해 봅시다.

[그림 2] 마키아벨리의 진실말하기

정보를 얼마나 공개할 것인가의 영역은 크게 4가지가 있습니다.
가로축은 대중이 알고 있는가 모르고 있는가를 구분하고 있고, 세로는 내가 밝히는가 숨기는가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A는 대중은 모르는 정보를 나만 알고 있고, 이를 숨기는 경우입니다. 나중에 밝혀질 수도 있고 끝까지 숨실 수도 있기 때문에 요행에 맡겨두기라고 명명합니다.
B는 대중이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먼저 밝히는 경우입니다. 이를 선제적 공격하기라고 명명합니다.
C는 대중이 아는데 나는 끝까지 부인하는 경우입니다. 이를 비협조적으로 나가기라고 명명합니다.
D는 대중이 알아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경우입니다. 이를 강제로 진실 말하기라고 명명합니다.

현재 상황이 "대중이 모르는데 나는 알고 있는 상황"인 A 에 있다고 합시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을까요?
이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이 문제가 나중에 밝혀질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숨길 수 있는것인가 입니다. 끝까지 숨길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밝혀서 문제를 크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정보의 전달이 워낙 쉽게 되기 때문에 끝까지 숨길 수 있는 경우가 점점 드물어지는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 밝혀진다면, 그림 3과 같이 두가지 경로를 통해서 밝혀질 것입니다.

[그림 3] 정보를 공개하는 두가지 경로


위의 그림에서 왼쪽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버티다가, 대중이 먼저 알아버렸을 때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공개하는 경우입니다. 반면 오른쪽은 대중이 정보를 모를 때 미리 선제적으로 정보를 공개하는 경우입니다. 두 경우 중에는 오른 쪽의 선제적 정보 공개가 비즈니스를 지속하는데 훨씬 유리한 듯 합니다.

예를 들어, 얼마전, 타이거 우즈가 외도를 했다는 언론 보도가 터졌습니다. 외도에 너그러운 미국 언론도, 많은 어린이들에게 존경받는 운동선수인 이상 문제가 된다는 분위기였습니다. 잇달아 "외도 대상이 한 명이 아니다, 몇명 더 있다." 식으로 계속해서 안좋은 뉴스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타이거우즈는 새로운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나는 섹스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다. 외도한 사람은 몇명이 아니라 27명이다."
그가 외도했다는 내용은 대중이 알고 있지만, 그가 섹스 중독이라는 기상천외한 병명은 대중은 모르는, 자신만 아는 정보입니다. 위 그림에서 A 영역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이를 먼저 선제적으로 공개하자, 언론의 분위기는 급속하게 누그러들었습니다.
"아 타이거 우즈가 나쁜 것이 아니라,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이구나. 불쌍하다."
위의 그림에서 "B. 선제적 공격하기"에 해당되는 전략입니다.

얼마전 제주도에서 한 고위급 젊잖으신 분이 지극히 인간다운 행동을 하는게 CCTV 에 찍혀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 때 이 분은 계속해서 자신의 행위를 부인했습니다. 경찰이 CCTV 조사 결과 등을 발표하자, 결과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인정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정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을 밝힘으로써 선제 공격을 했습니다.
"나의 정신과적 문제를 치료받겠다."
자신이 정신과적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여론은 거짓말같이 잠잠해졌습니다.

얼마전 시골의 한 대형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후 요양병원의 소방 안전이 사회적 이슈가 되었습니다. 저희 병원 인근 소방서에서도 계속해서 연락이 오곤 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관에서 자꾸 연락이 오는 것이 참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이 때 저희는 소방서에 제안을 했습니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소방 훈련을 하고 있긴 한데, 부족한 점이 많다. 소방서에서 나와서 소방훈련을 지도 감독해 달라."
소방서에서는 소방차를 여러대 출동시키고, 소방훈련을 시행해 주었습니다. 아주 제대로 해 주더군요. 인근 주민들에게 불이 난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것이라고 알리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역 사회 신문에 "서울와이즈병원 의왕소방서와 소방훈련 실시" 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났고, 저희 병원은 소방 대비를 철저히 하는 병원으로 이미지를 덧입힐수 있었습니다. 저희도 선제 공격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3.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대해서는 프로답게 대처하자.

언론사 기자에게 들은 얘기인데, 카메라 기자가 들이닥칠 경우 최악의 행동은 "찍지마세요." 라고 소리지르며, 종이로 카메라 렌즈를 가린다던가, 카메라를 밀치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카메라를 밀침으로써 흔들리는 화면, 바로 그것이 바로 카메라 기자가 원하는 최상의 컷이라고 합니다. 그런 화면이 방송에 나가면 시청자들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론사 기자가 병원을 방문하면, 직원은 기자의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홍보담당자에게 안내를 하도록 하는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홍보담당자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합니다.

제가 MBA 에 합격했을 때 어느 언론사 기자가 전화인터뷰를 하자고 했습니다. 의사가 MBA 를 가는 것은 당시로써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쭐해졌습니다. 기자와 거의 한시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포부, 제가 MBA 를 가는 이유 등 여러가지를 자랑스럽게 얘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자가 물어보았습니다.
"근데, 요즘 MBA 다녀온다고 해서 연봉이 그리 높지 않던데."
"아. 꼭 돈을 위해서 가는 것은 아니에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가는 거에요."
며칠 후 신문에 기사가 났습니다.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즘 MBA 다녀와도 별볼일 없다."
그리고 기사 중 제 이름은 한번나왔습니다.
"한편 배지수씨는 MBA 를 돈 벌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는 거라고 한다."

기자님들은 매우 과학적 사고방식에 능한 분들입니다.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기억해 보면 과학적 사고는 이런 순서로 흘러갑니다. 가설 => 검증 => 결론
기자들은 취재부터 하고, 귀납적으로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연역적 사고에 매우 능합니다. 취재를 오기 전에 가설을 먼저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메시지를 뽑아내려고 인터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약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언론 대처 훈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내부 훈련팀은 기자로 가장을 하고 카메라 플래시를 비추면서 제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몇가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1시간 정도 지나자, 그들은 다시 제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내용을 악의적으로 편집해서 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부정적 내용으로 편집된 기사를 들이 밀었습니다. 어떤 인터뷰이건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서 긍정적인 내용이 될 수도, 부정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언론 대처법에 대해서 몇가지 배운 점이 있습니다.

(1) 단답형으로 명확하게 대답하라.
말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기자는 편집할 수 있는 재료가 많아집니다.

(2) 동문서답을 하라.
기업의 입장에서 언론 인터뷰의 목적은 기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전할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는게 바람직합니다.

(3) 오프더레코드 상황에서 방심하지 말라.
"자, 이만하면 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카메라 기사님 이제 카메라 끄셔도 됩니다." 라고 할 때 긴장하시기 바랍니다. 카메라 끄고 나서 "근데 아까 그 일, 사실 내막은 어떤 거에요?" 라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메라는 빨간 등이 꺼져도 계속 돌아갈 수 있습니다.

(4) 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언론중재를 신청하라. 
모든 언론사에 대해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군데 큰 언론사를 대상으로 언론중재 신청을 하고 그 결과를 받아두십시오. 이를 다른 언론사에 보내줌으로써 다른 언론사의 왜곡 보도를 막을 수 있습니다.

4. 커뮤니케이션은 진실되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하라.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은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상황 판단에 따라 사실을 얘기 안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왜곡해서 얘기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일을 크게 만들기 쉽습니다.

5. 전 직원이 명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들어 교육하라.

매일 상황을 업데이트해서 핵심 직원들에게 매뉴얼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론대응, 법적대응, 고객대응을 할 직원들을 명확히 정해주고, 그들이 어떤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지 알려주도록 합니다.
최근에는 카카오톡으로 대화방을 만들고 여기에 급박하게 변화하는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6. 위기를 혁신과 발전의 기회로 삼고 Next Plan 을 수립하라.

최근 경영학에서의 화두가 회복 탄력성입니다.
위기를 겪으면서 직원들 간에 팀워크가 돈독해지기도 하고, 그동안의 조직이 취약했던 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미리 신경을 못 썼던 아쉬움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잘 취합해서 병원을 더 건강하고 우수한 조직으로 바꿔 나가는 기회가 됩니다.
또 위기를 겪고 나서 피폐해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젼이 필요합니다. 




위 내용은 부산좋은문화병원 구자성 선생님의 강의내용을 참조, 인용하였음을 밝혀드립니다. 

25. 병목을 해결하자

한 소문난 음식점이 있습니다. 고객들은 음식점 앞에 30분 동안 줄서서 대기하다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음식점의 내부를 보니, 빈 테이블이 덤성 덤성 눈에 띕니다. 그림1 을 보니, 27개 테이블 중 10개가 비어 있습니다. 가동율이 62% (=17/27) 수준 밖에 안되는 듯 합니다.  이 음식점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그림 1] 음식점 테이블 점유율

아마 대기고객을 빈테이블로 안내하는 직원이 문제가 있을 듯 합니다. 그 직원은 "병목자원(Bottle Neck)"인 듯 합니다. 

우리가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길이 막힙니다. 30분 걸려서 겨우 1km 전진하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다 보면 자동차 사고가 나 있는 지점을 보게 됩니다. 그 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다시 차는 쌩쌩 달리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한마디 합니다. 
"경찰은 뭐하고 있어. 사고차 빨리 빼 줘야지."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병목을 해결해야지" 하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병목 현상"이라는 말을 자주 쓰곤 합니다. 일반적으로 길이 좁아지는 부분을 병목(Bottle Neck)이라고 합니다. 병목 지점의 특성은 두가지가 있습니다. "길이 좁아지는 부분"이기도 하고, "속도가 늦어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MBA 시절 오퍼레이션 이라는 과목 시간에 "더골 (The Goal)" 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약이론 TOC (Theory of Constraint)을 쉽게 설명한 명서입니다. 

주인공 알렉스 로고는 한 공장의 공장장입니다. 그의 공장은 만성적으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느날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하면 공장을 폐쇄한다는 본사의 통고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공장의 기계들을 효율성(단위시간당 처리속도)를 높은 기기로 교체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해 왔었는데 그 공장의 수익성은 올라가지 않고 있는 상항입니다. 

그 때 대학시절 은사인 요나 교수를 만나게 됩니다. 요나 교수는 공장을 방문해 보고, 재고가 많이 쌓여있는 한 프로세스를 발견합니다. 그 프로세스를 담당하는 기계는 NCX-10이라는 최신 로봇입니다. 기존에 구식 기계가 있었는데, 생산성이 떨어져, 최근에 NCX-10로 대치하였고, 이로 인해 그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36% 향상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요나교수는 물어봅니다.

요나교수: "그런가? 놀라운 수치준. 36%라. 그렇다면 자네 회사는 로봇을 설치함으로써 36%의 이윤을 더 얻고 있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그런가?"

알렉스 공장장: "글쎄요. 손익계산은 현실과 많이 다르죠. 현장에서 실제로 수익을 내고 있는 부분은 한 부분에 지나지 않거든요."

요나 교수: "그렇다면 실제로는 생산성이 증가된 것이 아니군."

알렉스와 요나교수는 공장의 여러 프로세스 중, NCX-10 이 최신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병목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NCX-10 은 여러 기계 중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계임은 틀림이 없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기계이지만, 그 프로세스 앞에 재고가 쌓여있는 것을 보니 병목인 것입니다.

[그림 2]



요나교수는 오래된 구식 기계들을 다시 꺼내어 NCX-10 옆에 추가로 배치하도록 합니다. 병목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 기계만의 처리속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단계의 처리속도를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처리속도가 늦은 기계라도 병렬로 배치해서 그 프로세스 자체의 처리속도를 높이라는 것입니다.

[그림 3]


이 내용은 병목 현상을 해결하는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부분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참 쉬운 얘기입니다. 이렇게 못하고 있는 것이 바보같은 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병원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10여년 된 소아정신과를 인수해서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소아정신과는 환자가 내원해서 치료받는 경로가 다음과 같습니다. 

홍보 노출 => 전화 예약 => 대기 => 의사 초진 => 진단을 위한 심리검사 => 의사와 결과상담 => 치료

[그림4]


소아정신과의 수입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면서 발생하는 진료비 수입 (급여)과 치료실에서 놀이치료, 학습치료, 사회성치료등이 이루어지면서 발생하는 수입 (비급여) 입니다. 

10년 정도 된 그 병원은 두가지 특성이 있었습니다. 

1. 재진 환자가 많다. => 진료비 (급여) 수입이 많다.  
10년된 병원이다 보니 병원에 다닌지 3~5년 정도된 재진 환자가 많았습니다. 오래된 재진환자들은 치료실 이용은 잘 안하고, 의사를 만나 약을 받아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진료비 수입만 발생하는 셈입니다. 병원에 다닌지 3~5년 정도 되었으니 매번 방문할 때마다 약처방이 바뀌지 않고 그냥 리필만 하는 안정된 환자들이었습니다. 

2. 치료실 가동율은 60% 정도밖에 안된다. => 치료비 (비급여) 수입은 적다. 
그 병원은 치료실 가동율이 60% 정도 되는 잘 운영이 안되는 병원이었습니다. (그림에서 치료실 중 회색으로 표시된 치료실이 빈 치료실입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치료실의 가동율을 올리는 것입니다. 치료실의 가동율을 올리기 위해 처음 제가 생각한 액션은 환자가 적으니 더 많이 오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을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홈페이지를 좀 더 내용이 알차고 세련되게 개선하고, 네이버 광고비 예산을 올리고, 인근 지역 신문에 광고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답은 대기시간에 있었습니다. 초진 환자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하고 의사를 만나기까지 2주 정도 대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초진을 한 다음 임상심리사를 만나 심리검사를 받고 다시 의사가 결과상담을 하는 시간까지 추가로 2주일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결국 치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한달 가까이 대기시간이 걸리는 셈이었습니다.

이 상황은 마치 음식점이 내부는 비어있는데 밖에는 대기 고객들이 줄을 서 있는 것과 똑같았습니다. 의사의 진료와 임상심리사의 검사가 병목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환자를 더 오게 하려고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투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재 오고있는 환자들을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의사의 진료와 임상심리사의 심리검사로 형성되어 있는 병목을 풀어주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와 임상심리사를 고용하는 것일 것입니다.

임상심리사는 한명 더 고용하는 것으로 병목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의사를 한명 더 고용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진료 상황을 가만히 보니, 재진 환자가 너무 많아 신환을 볼 수가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오래된 병원이다 보니, 병원에 다닌지 수년 된 환자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처방 변화 없이 똑같은 약만 받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2~3개월치 약을 처방해 주어도 큰 무리가 없지만, 기존에는 2주~1개월씩 약을 처방해 주어 자주 방문하게 해서 진료비 수입을 올리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처방 기간을 늘려 재진을 과감하게 줄여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진료비 수입이 줄어드는 위험이 있었지만, 대신 신환을 많이 받아서 치료비 수입을 늘리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 판단했습니다. 또한 약을 변화없이 리필해가는 환자분들도 병원을 자주 방문하는 것 보다 2~3개월에 한번씩 방문하도록 하니 더 좋아했습니다. 마치 원숭이가 항아리 속에서 콩을 꺼내야 할 때 너무 많은 콩을 쥐면 손을 뺄 수 없으니, 콩을 좀 놓아서 콩을 빼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재진 환자 중 병원에 방문한 지 2년 이상 된 환자들에게는 그냥 똑같은 약을 주기적으로 처방하는 것이므로, 기존에 한달에 한번씩 오는 환자들을 2개월 3개월치 약을 처방해서 재진 내원을 줄였습니다.그리고 빈 시간에 신환을 더 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마케팅 비용을 추가로 들이지 않고 병원의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병원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는 프로세스를 일렬로 나열해 보고, 그 중에 병목을 해결해 주면 효율성이 올라갑니다.
병목을 찾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어떤 프로세스 앞에 대기시간이 가장 긴 시간이 병목입니다. 그 단계를 해결해주면 병목은 해결됩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병목은 움직입니다. 한 단계를 해결해 주면 다른 단계에서 병목이 형성됩니다. 그래서 한 단계의 병목을 해결했다고 마음을 놓지 말고, 지속적으로 대기시간이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해결해 나가는게 필요합니다. 

2014년 11월 19일 수요일

24. 자유 평등 박애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 정신입니다. 

좀 이상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는 브루조아 계급입니다. 이들은 자본가들입니다. 민중들이 아니라 돈을 모은 부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자유가 없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굳이 자유를 외쳤을까요? 

평등은 좀 이해가 됩니다. 돈도 벌었겠다, 귀족과 맞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장 이상한 점은 "박애"입니다. 피흘리면서까지 혁명을 하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인류애"를 주장한 것일까요? 기독교 국가이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왕의 목을 쳐서 죽일 것 까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우리가 프랑스 혁명을 민중들의 혁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 브루조아 계급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갑니다. 

이들이 외친 자유는 신체적 자유, 여행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아닙니다. "사유재산권 이행의 자유" 입니다. "내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왕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영토를 늘린다고 자꾸 전쟁을 했습니다. 영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했습니다. 전쟁을 하려니 돈이 필요합니다.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왕 자신은 국가의 재정을 펑펑 쓰고, 부족하면 부르조아 계급에게 세금을 거둬 메우려하니, 화가 날만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장은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 브루조아 계급의 대표를 참여시키자는 것입니다. 왕이 세금을 거두려면 왕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조아 계급의 대표자들이 참가하는 의회에서 승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내 재산의 사용은 "내 의사에 따라", 백번 양보하면 "내 동의를 거쳐"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평등은 좀 이해가 쉽습니다. 사람은 돈을 벌면 명예를 원합니다. 브루조아 계급 사람들은 돈이 생기니 귀족이 거드름 피우는 것이 보기 싫었을 듯 합니다. 돈이 있으니 귀족이나 마찬가지로 대우해달라, 우리도 귀족이나 마찬가지다 뭐 이런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본가 계층이 노동자 계급의 인권을 보호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브루조아 계급 자기네의 레벨을 귀족과 마찬가지로 하자 이정도였을 것입니다. 돈 얘기를 하자면, 우리도 세금 내고, 귀족도 세금 똑같이 내자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애는 무엇일까요? 박애를 사전찾아보면 "인류애" 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하면서 "우리 혁명 하는 김에 아프리카 굶는 아이들에게 돈을 모아서 보내볼까?" 이런 숭고한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며 "너네 귀족들 우리에게 좀 사랑을 베풀어달라." 이런 뜻이었까요?

"박애"를 "인류애"라고 번역하는 것은 좀 잘못된 번역 같습니다. "동지애"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운동권 사람들이나 노조 들이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연대" 입니다. 학생시절 운동권 형님들 따라 가투 나가서 불렀던 안치환의 노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와닿습니다.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당시 브루조아 계급도 연대만이 왕의 군대를 이기는 길임을 알았던 셈이지요. 

이러고 보니 프랑스 혁명은 민중 혁명이라기 보다는 브루조아 계층이 정부의 세금 징수에 저항한 혁명인 듯 합니다.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지키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의 사용은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이런 시민혁명의 결과로 형성된 서구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업가들의 이익을 위한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나라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피튀기게 경쟁을 합니다. 해외 자본의 유치를 위해 국가 원수가 체면 없이 세일즈외교 한다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 대상으로 정책 로비스트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사회에 대해서 놀라왔던 점은 정치인들이 일반 대중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떳떳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좀 다른 듯 합니다. 정치인들이 기업의 의견을 듣기는 합니다만, 떳떳하게 노골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여론의 질타를 받습니다. "쟤는 왜 기업에 특혜를 못 줘서 안달이야. 뭐 먹었어?"

21세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자본주의 사상이 팽배한 중국은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평등주의 사상이 팽배한 한국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은 기업가들의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시민혁명의 성공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6.29 선언 때인 듯 합니다. 시민혁명 때 기업가들은 혁명의 주체가 아닌 혁명의 대상 편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혁명은 "제 3계급"이 아닌 "제 4계급"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3계급"은 시민혁명에 참여하지 못하고, 혁명의 대상에 빌붙었습니다. 가진게 많았고, 가진 것을 잃는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의 주도권은 제 3계급이 아닌 제 4계급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업보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근데 기업하는 입장에서 좀 속상합니다. 선배 기업가들의 업보를 젊은 기업가들이 뒤집어 쓰는 것 같습니다. 

23. 농민과 화적떼

옛날 옛적에 인류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족과 화적때.
화적때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농민들이 지어놓은 농작물을 약탈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화적때들은 어느순간 깨달았습니다. 농민들 먹을 것 없이 다 빼앗아가면, 농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리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듬해에는 새로운 약탈할 대상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것을. 이후부터는 농민들의 농작물을 반은 남겨두고 반만 빼앗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화적때가 한 부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듬해에도 빼앗아먹으려고 농작물의 반을 남겨두었더니, 듣보잡 같은 엉뚱한 화적때가 와서 농작물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두고 두고 우려먹어야 할 농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순간부터 농민들과 화적때들은 사회적 계약을 맺게 됩니다. 농민들은 한 화적때를 정해서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는 대신, 다른 화적때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적때들은 정착을 하게 되고, 농민들 위에 지배자로 군림을 하게 됩니다. 화적때는 귀족이 되어 농민들이 바친 세금을 먹고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화적때가 그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화적때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 훈련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의 역사를 보면, 군사들이 귀족 계층을, 농민들이 피지배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기사들이 귀족이 되어 농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귀족이 되어 농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중국의 청나라 역시 농민들이 대다수였던 한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약탈을 일삼던 만주족들은 지배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은 무인들이 문인들에 비해 푸대접을 받은 것은 예외적인 일인 듯 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군인 출신인것을 고려해보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아마도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긴 했지만, 신생국가의 설계를 문인 출신인 정도전이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국 당시 정도전이 매우 주도적인 위치였나 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조선 초기는 상당히 민주적인 국가였을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는 일제시대 종로 상가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인들은 열심히 돈을 벌었고, 정기적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상납금을 바쳤습니다. 조폭들은 그 돈을 받는 대신, 구역을 정해서 다른 조폭들이 우리 구역에 와서 상납금을 받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조직폭력배 들 사이에 구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조직폭력배들은 상인들에게 상납금을 적게 받아서 인심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두한 인 듯 합니다. 인심을 얻어 후에 정치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MBA 시절 회계학을 공부할 때 회계학 교과서 서문에 인상적인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동산을 영어로 Real Estate 라고 합니다. 왜 Real 이라고 했을까요? 그동안 부동산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자산"이고, 동산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니깐 "가짜 자산"인가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은 전혀 의외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Real Estate 에서 말하는 Real 은 "진짜"라는 뜻의 "리얼" 이 아니라, Royal 의 스페인어인 "레알" 이라는 것입니다. 명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에서  "레알"이 스페인어로 Royal 이라는 뜻이라는군요.
 
원래 부동산은 원래 왕의 자산이었던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농민들은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왕의 자산에서 소작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세금은 내가 나라에 기여하는 "생색낼 만한" 것이 아니라, 왕의 자산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계학 교과서 서문은 이렇게 끝맺고 있었습니다.
"부동산이 당신 자산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자산인지 국가 자산인지 알고 싶은가? 세금을 안내고 버텨보라. 그리고 누가 권리를 행사하는지 지켜보라. 누구의 소유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인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민중들에게 권력이 이양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지배층이 가지고 있던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부"라는 형태로 옮겨간 것이지요.
 
최근에 제 주변에 친하게 지내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상당수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세무조사를 받은 분들은 한결같이 억울함을 호소하시곤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정하게 해서 세금 포탈을 하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동안 부정 없이 열심히 벌고 양심적으로 열심히 세금도 납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증명 자료를 구비해두지 못해서 세금추징을 과하게 당하셨다고 느끼는 듯 합니다. 부정하게 해 온 것을 추징 당했건 억울하게 번 돈을 추징당했건 다들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위로를 합니다.
"어차피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땅에서 벌어먹고 사는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낼 것을 냈다고 생각하십시오. 국가가 그래도 우리를 다른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주니, 사회적 계약에 따라 그 댓가를 냈다고 생각하세요."
 
사업가는 사업을 감시하는 시어머니들이 항상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은 세무서가 시어머니입니다. 제약회사에 있을 때는 세무서도 시어머니이지만 또 하나의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
근데 병원은 시어머니가 좀 많습니다. 세무서 뿐 아니라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보건소 등 4군데나 되니 좀 힘드네요.

2014년 10월 29일 수요일

22. 신뢰도 높이는 광고 메시지

"주정차 CC 카메라 설치 목숨걸고 결사반대"

어느 식당가에서 재미있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두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목숨은 그 정도 일에 함부로 거는 것이 아닌데."
2. "이 현수막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걸었을까?"
 
이 지역은 음식점이 모여있는 곳이니, 상인들이 걸었을 것입니다. 고객들이 길거리에 불법주차를 하고 음식점을 출입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구청에서 불법주차 단속을 위해 CCTV 를 설치한다고 한 듯 합니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손님이 줄어 상권이 약화될까 걱정이 될만 합니다.
 
상인들의 마음은 이해가 가나, 이 현수막은 대중이나 구청을 설득할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두가지 면에서 신뢰도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부적절하게 극단적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이 사람들이 CCTV 설치 때문에 목숨을 걸것이라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겠습니까?
 
둘째는 현수막을 붙인 주체의 이익에 부합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은 상인들의 이익을 위해 공익에 위배되는 불법주차를 허용하자는데 설득당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 기회에 소비자 행동 연구라는 분야에서 연구된 마케팅 메시지의 수용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1) 정보를 전달하는 화자의 전문성이 높을 때 메시지의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대표적인 예가 건강식품 광고에서 유명한 의사가 나와서 광고를 하는 사례입니다. 건강식품을 의사가 나와서 광고하면 효과가 참 좋겠지요. 건강식품 회사 입장에서 의사는 매력있는 광고 모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을 보면 건강식품을 광고하는 의사 선생님들은 지극히 소수입니다. 의사 사회가 자정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 광고에 출연하는 의사의 경우 동료의사들로부터 지탄을 받기 쉽습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는 의사들이 의학적 자존심을 지키고,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훌륭한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면 종종 연락이 오는 곳이 있습니다. 얼마의 돈을 내면 유명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브랜드 대상" 수상자로 선정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거 선정되는게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물으니, 홈페이지에 "XX 신문사 선정 브랜드 대상" 이라고 적으랍니다. 소비자에게 "XX 신문사같은 전문성 있는 곳에서 상을 줄 정도면, 이 병원 믿을만하군." 하고 믿게 만드는 효과가 있겠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앞으로 무슨 "브랜드 대상"이라고 적혀있는 것은 "뭔가 잘 해서 받은 상이 아니라, 돈 주고 받은 상"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하간 이런 비즈니스가 먹히는 이유 역시 전문성 있는 화자(신문사)의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한편, 극단적인 주장을 할 때, 높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 얘기하는게, 낮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얘기하는 것 보다, 수용성이 더 높았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루 와인 반병 정도는 간 건강에 도움이 된다." 라는 말도 안되는 메시지를 저같은 정신과 의사가 하면 "정신나갔군." 하고 받아들이겠지만, 간전문의가 하면 "그런가?" 하고 솔깃해 지게 마련입니다.

위의 CCTV 설치 반대에 목숨걸겠다는 현수막도 "데모에 전문성도 없는" 상인들이 극단적인 주장을 하니깐 더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데모에 전문성이 높은"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민주노총 지도부 정도 되는 사람들이 "XXX 결사 반대." 라고 하면 실제로 목숨을 걸 것이라고는 생각안하겠지만, 적어도 뭔가 강력한 투쟁을 할 것이라는 위협은 될 듯 합니다.

(2) 화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을 때에도 신뢰도는 높아집니다.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악수 한번 하는 것이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들은 악수를 너무 많이 하다가, 오른손이 너무 아파서 왼손으로 악수하기도 합니다. 하루에 악수를 수천명하고 하면 그럴 법도 하지요.

환자들은 병원을 선택할 때 소개받고 가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제가 환자의 자격으로 다른 병원을 방문할 때, 담당 의사가 개인적으로 아는 척해 주는 것이 좋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저는 제가 환자를 볼 때 차트에 환자의 의학적 정보 뿐 아니라 개인적 신상을 간단하게 메모해 두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분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메모에 적어두었다가, 다음 진료 때  "여행 잘 다녀오셨어요?" 라고 물어보면서 진료를 시작하는 식입니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주장을 펼 때 신뢰도는 높아집니다.

환자가 많아야 먹고사는 의사가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강의한다던가, 암센터에서 "한국인의 암 예방 수칙" 이나 "금연 클리닉" 을 홍보하는 것 역시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분유회사에서 "모유 먹이기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위 현수막의 경우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나, 공익에 반하는 주장을 하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4) 자신의 의도를 감추며 메시지를 전달할 때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와이프에게 다이어트하라고 직접 얘기하는 간 큰 남자는 없겠지요. 차라리 예쁜 옷 사라고 돈을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있습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을 판매하는 제약회사가, 상품을 홍보하는 대신, "여성 건강의 날" 이나, "여성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수준높은 세련된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대기업들은 상품을 광고하기 보다는 "인재 양성", "창조 경영"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기업 이미지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메시지를 전달하는 화자가 매력이 있을 때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닉슨과 케네디의 대통령 선거 당시, TV 토론을 라디오로 들은 사람은 닉슨에게 호감을 느낀 반면, TV 를 시청한 사람은 케네디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지난 미국 대선 때 오바마와 멕케인 중 오바마를 선택한 것도 오바마의 젊고 활기찬 모습이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같이 철없는 40대 아저씨들도 소녀시대나 수지가 광고하는 제품은 자세히 따져보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잘 생긴 것, 매력적으로 태어난 것이 부모님으로부터 수억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 보다 더 큰 유산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점점 느껴지는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외모 이외에 자신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겠지요. 

이 기회에 우리 병원의 마케팅 메시지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위의 요소를 충분히 고려한 것인지, 그리고 좀 더 세련되고 수준높은 메시지를 개발할 수 있을지 고려해 봐야 하겠습니다.


Note: 위의 내용은 [소비자 심리의 이해, 홍성태 저, 1992] 를 참조,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21. Sunk Cost Fallacy

한 다국적 제약회사는 현재 두가지 신약 물질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A 물질은 자체개발을 한 물질입니다. 그동안 연구 개발비로 100억원을 썼고, 향후 50억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는데 기대 수익은 380억원입니다.
  • B 물질은 한 벤처회사에서 개발한 물질인데, 현 단계에서 우리 회사에 팔겠다고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이 물질을 사오는 가격과 향후 런칭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총 150억원이고, 향후 기대 수익은 450억원입니다.

[그림 1]



회사는 두 물질에 다 투자할 여력은 없어, 두 제품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물질을 선택해야 할까요?

B물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의 논리는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 A 물질은 150억원을 투자해서 380억원의 수익을 남긴다.  
  • B 물질은 150억원을 투자해서 450억원의 수익을 남긴다. 
  • 따라서 투자대비 수익은 B 가 더 크다.  
[그림 2]




한편 A 물질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의 논리는 좀 다를 것입니다. 
  • 회사 입장에서 기왕에 투자한 돈은 100억인데, 이 돈은 A물질을 선택하던지, B물질을 선택하던지 이미 들어간 돈이다. 
  • A 물질을 선택하면 앞으로 50억이 추가로 들어가고, 380억원의 수익을 남긴다. 투자 대비 수익은 380억-50억=330억. 
  • B 물질을 선택하면 앞으로 150억이 추가로 들어가고, 450억원의 수익이 남긴다. 투자 대비 수익은 450억-150억=300억.
  • 따라서 현 시점에서 투자대비 수익은 A가 더 크다. 
[그림 3]


사실 회사의 입장에서 이미 100억원은 쓴 돈이고 A를 선택하건 B를 선택하건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기존에 쓴 돈은 잊어버리고 향후 들어갈 돈과 향후 벌어들일 돈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위의 문제의 답은 A 가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기왕에 쓴 돈 100억원에 집착해서 의사결정을 그르치는 것을 Sunk Cost Fallacy 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이나, 비즈니스 현장에서 이런 Sunk Cost Fallacy 를 범하는 경우는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주식 투자를 할 때 입니다. 기왕에 잃은 돈이 아까와 떨어지고 있는 주식을 손절매 못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기를 놓친 처녀 총각이 자신이 과거에 한창 잘 나갈 때 만났던 이성의 수준을 생각하고 눈을 못 낮추는 것도 비슷한 경우일까요?

병원을 개업한지 일년차 된 원장님이 지난 일년동안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병원이 잘 안된다면 목을 잘 못 잡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그동안 들어간 인테리어 비용이 sunk cost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이 sunk cost fallacy 에 빠지지 않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병원의 경우 초기에 거액을 들여 인테리어를 했지만, 병원을 경영하면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초기 인테리어를 철거하고, 상당 부분 인테리어를 다시 했습니다. 
그럴 때 혹자는 기존에 투자한 돈 아까운줄 모르고 다시 한다고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수익이 안나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에 투자한 인테리어 비용이 아까와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은 sunk cost fallacy 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원의 박람회에 다녀보면, 산부인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 가정의학과 전문의, 심지어 정신과 전문의들이 피부 레이저 시술 강좌를 듣고 있는 것을 봅니다. 
두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는 개원가에서 과별 경계가 무너지는 추세에 있다는 점이고, 또 한가지는 피부과 전문의 선생님들은 짜증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선생님들의 개인 입장에서 본다면, 수익이 나지 않는 전공과를 포기하고, 과감하게 컨셉을 바꾸는 시도를 한다는 측면에서는 sunk cost fallacy 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비정상적인 고질적 저수가 정책이 이런 식으로 의료시장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