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인류는 두 부류가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부족과 화적때.
화적때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농민들이 지어놓은 농작물을 약탈해서 먹고 살았습니다. 화적때들은 어느순간 깨달았습니다. 농민들 먹을 것 없이 다 빼앗아가면, 농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리하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듬해에는 새로운 약탈할 대상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것을. 이후부터는 농민들의 농작물을 반은 남겨두고 반만 빼앗아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화적때가 한 부족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듬해에도 빼앗아먹으려고 농작물의 반을 남겨두었더니, 듣보잡 같은 엉뚱한 화적때가 와서 농작물을 빼앗아간 것입니다. 이렇게 되니 두고 두고 우려먹어야 할 농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어느순간부터 농민들과 화적때들은 사회적 계약을 맺게 됩니다. 농민들은 한 화적때를 정해서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상납을 하는 대신, 다른 화적때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화적때들은 정착을 하게 되고, 농민들 위에 지배자로 군림을 하게 됩니다. 화적때는 귀족이 되어 농민들이 바친 세금을 먹고 살게 됩니다. 그렇다고 화적때가 그냥 놀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화적때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 훈련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나라의 역사를 보면, 군사들이 귀족 계층을, 농민들이 피지배계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기사들이 귀족이 되어 농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일본은 사무라이들이 귀족이 되어 농민들의 세금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중국의 청나라 역시 농민들이 대다수였던 한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약탈을 일삼던 만주족들은 지배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입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은 무인들이 문인들에 비해 푸대접을 받은 것은 예외적인 일인 듯 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군인 출신인것을 고려해보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아마도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긴 했지만, 신생국가의 설계를 문인 출신인 정도전이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개국 당시 정도전이 매우 주도적인 위치였나 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조선 초기는 상당히 민주적인 국가였을 것 같습니다.
이런 구조는 일제시대 종로 상가에서도 비슷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상인들은 열심히 돈을 벌었고, 정기적으로 조직폭력배들에게 상납금을 바쳤습니다. 조폭들은 그 돈을 받는 대신, 구역을 정해서 다른 조폭들이 우리 구역에 와서 상납금을 받는 것을 막아주었습니다. 조직폭력배 들 사이에 구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조직폭력배들은 상인들에게 상납금을 적게 받아서 인심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두한 인 듯 합니다. 인심을 얻어 후에 정치에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MBA 시절 회계학을 공부할 때 회계학 교과서 서문에 인상적인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부동산을 영어로 Real Estate 라고 합니다. 왜 Real 이라고 했을까요? 그동안 부동산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자산"이고, 동산을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니깐 "가짜 자산"인가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은 전혀 의외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Real Estate 에서 말하는 Real 은 "진짜"라는 뜻의 "리얼" 이 아니라, Royal 의 스페인어인 "레알" 이라는 것입니다. 명문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 에서 "레알"이 스페인어로 Royal 이라는 뜻이라는군요.
원래 부동산은 원래 왕의 자산이었던 것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농민들은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왕의 자산에서 소작을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세금은 내가 나라에 기여하는 "생색낼 만한" 것이 아니라, 왕의 자산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으로" 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계학 교과서 서문은 이렇게 끝맺고 있었습니다.
"부동산이 당신 자산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 자산인지 국가 자산인지 알고 싶은가? 세금을 안내고 버텨보라. 그리고 누가 권리를 행사하는지 지켜보라. 누구의 소유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인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민중들에게 권력이 이양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지배층이 가지고 있던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정부"라는 형태로 옮겨간 것이지요.
최근에 제 주변에 친하게 지내던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상당수가 세무조사를 받았습니다. 세무조사를 받은 분들은 한결같이 억울함을 호소하시곤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부정하게 해서 세금 포탈을 하신 분들도 있고, 어떤 분들은 그동안 부정 없이 열심히 벌고 양심적으로 열심히 세금도 납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증명 자료를 구비해두지 못해서 세금추징을 과하게 당하셨다고 느끼는 듯 합니다. 부정하게 해 온 것을 추징 당했건 억울하게 번 돈을 추징당했건 다들 억울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위로를 합니다.
"어차피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가의 땅에서 벌어먹고 사는 만큼, 감사한 마음으로, 낼 것을 냈다고 생각하십시오. 국가가 그래도 우리를 다른 적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주니, 사회적 계약에 따라 그 댓가를 냈다고 생각하세요."
사업가는 사업을 감시하는 시어머니들이 항상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업은 세무서가 시어머니입니다. 제약회사에 있을 때는 세무서도 시어머니이지만 또 하나의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입니다.
근데 병원은 시어머니가 좀 많습니다. 세무서 뿐 아니라 건강보험공단, 심사평가원, 보건소 등 4군데나 되니 좀 힘드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