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 정신입니다.
좀 이상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는 브루조아 계급입니다. 이들은 자본가들입니다. 민중들이 아니라 돈을 모은 부자들입니다. 이들에게 자유가 없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왜 굳이 자유를 외쳤을까요?
평등은 좀 이해가 됩니다. 돈도 벌었겠다, 귀족과 맞먹고 싶었을 것입니다.
가장 이상한 점은 "박애"입니다. 피흘리면서까지 혁명을 하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인류애"를 주장한 것일까요? 기독교 국가이니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에 깊이 감동을 받았을까요? 그렇다면 굳이 왕의 목을 쳐서 죽일 것 까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도통 헷갈립니다.
이렇게 헷갈리는 이유는 우리가 프랑스 혁명을 민중들의 혁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 브루조아 계급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갑니다.
이들이 외친 자유는 신체적 자유, 여행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아닙니다. "사유재산권 이행의 자유" 입니다. "내것은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시 프랑스 왕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영토를 늘린다고 자꾸 전쟁을 했습니다. 영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자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했습니다. 전쟁을 하려니 돈이 필요합니다.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왕 자신은 국가의 재정을 펑펑 쓰고, 부족하면 부르조아 계급에게 세금을 거둬 메우려하니, 화가 날만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주장은 의회를 구성하고, 의회에 브루조아 계급의 대표를 참여시키자는 것입니다. 왕이 세금을 거두려면 왕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브루조아 계급의 대표자들이 참가하는 의회에서 승인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내 재산의 사용은 "내 의사에 따라", 백번 양보하면 "내 동의를 거쳐"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평등은 좀 이해가 쉽습니다. 사람은 돈을 벌면 명예를 원합니다. 브루조아 계급 사람들은 돈이 생기니 귀족이 거드름 피우는 것이 보기 싫었을 듯 합니다. 돈이 있으니 귀족이나 마찬가지로 대우해달라, 우리도 귀족이나 마찬가지다 뭐 이런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자본가 계층이 노동자 계급의 인권을 보호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냥 브루조아 계급 자기네의 레벨을 귀족과 마찬가지로 하자 이정도였을 것입니다. 돈 얘기를 하자면, 우리도 세금 내고, 귀족도 세금 똑같이 내자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박애는 무엇일까요? 박애를 사전찾아보면 "인류애" 라는 뜻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하면서 "우리 혁명 하는 김에 아프리카 굶는 아이들에게 돈을 모아서 보내볼까?" 이런 숭고한 생각을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니며 "너네 귀족들 우리에게 좀 사랑을 베풀어달라." 이런 뜻이었까요?
"박애"를 "인류애"라고 번역하는 것은 좀 잘못된 번역 같습니다. "동지애"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운동권 사람들이나 노조 들이 많이 쓰는 말이 있습니다. "연대" 입니다. 학생시절 운동권 형님들 따라 가투 나가서 불렀던 안치환의 노래를 생각해 보면 쉽게 와닿습니다.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 함께가자 우리 이 길을 동지의 손 맞잡고"
당시 브루조아 계급도 연대만이 왕의 군대를 이기는 길임을 알았던 셈이지요.
이러고 보니 프랑스 혁명은 민중 혁명이라기 보다는 브루조아 계층이 정부의 세금 징수에 저항한 혁명인 듯 합니다.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지키고, 자신들의 사유재산의 사용은 자신들의 결정에 따라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입니다.
이런 시민혁명의 결과로 형성된 서구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기업가들의 이익을 위한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나라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피튀기게 경쟁을 합니다. 해외 자본의 유치를 위해 국가 원수가 체면 없이 세일즈외교 한다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 대상으로 정책 로비스트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사회에 대해서 놀라왔던 점은 정치인들이 일반 대중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떳떳하게 생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좀 다른 듯 합니다. 정치인들이 기업의 의견을 듣기는 합니다만, 떳떳하게 노골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는 못하는 듯 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여론의 질타를 받습니다. "쟤는 왜 기업에 특혜를 못 줘서 안달이야. 뭐 먹었어?"
21세기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자본주의 사상이 팽배한 중국은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고, 평등주의 사상이 팽배한 한국은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기업가들이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런 현상은 기업가들의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시민혁명의 성공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6.29 선언 때인 듯 합니다. 시민혁명 때 기업가들은 혁명의 주체가 아닌 혁명의 대상 편에 서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민혁명은 "제 3계급"이 아닌 "제 4계급"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안타깝게도 "제 3계급"은 시민혁명에 참여하지 못하고, 혁명의 대상에 빌붙었습니다. 가진게 많았고, 가진 것을 잃는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의 주도권은 제 3계급이 아닌 제 4계급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업보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할말이 없습니다.
근데 기업하는 입장에서 좀 속상합니다. 선배 기업가들의 업보를 젊은 기업가들이 뒤집어 쓰는 것 같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