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6일 일요일

20. 규모의 경제를 통한 변동성 관리

MBA 시절 어느 컨설팅 회사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자: "Re-Insurance 회사가 하나 있습니다. 그 회사는 비슷한 규모의 또 다른 Re-Insurance 회사를 M&A 하려고 합니다.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나: "Re-Insurance 라는게 어떤 회사인가요?"

질문자: "보험회사가 보험을 드는 회사입니다. ING, AIG 같은 큰 보험회사도 자신들이 예측 못한 규모의 지급금을 주어야 할 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둡니다. Re0Insurance 란 이런 보험회사를 상대로 보험을 들어주는 회사인데 주로 금융이 발달한 영국 같은데 있습니다. 우리나라 보험회사들도 다 여기 보험을 들어 둡니다."

나: "근데 이 회사는 M&A 를 하고 싶어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질문자: "일단 그것을 생각해 보시는게 문제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죠."

나: "일단 규모가 크면 지급금이 예측못한 수준으로 많아지는 위험을 관리하기 편하지 않을까요?"
"규모를 키워서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보험 사업을 하기 위해서인가요?"
"경쟁사를 집어 삼켜서, 독과점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질문자: "다 좋은데, 그런 식으로 일반적인 M&A 케이스에서 생각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기에는 이미 충분히 규모가 큰 회사입니다. 현재의 규모도 이미 충분히 커서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M&A 를 굳이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나: 침묵...

질문자: "좀 어려운가요? 힌트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파이낸스 적으로 생각을 해 보시지요."

나: (속으로) '파이낸스적으로 생각하라니... 힌트 맞아?'
저는 머리속이 하예지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침묵을 지키고 있자 질문자는 다지 얘기를 꺼냈습니다. 

질문자: "고등학교 때 정규분포 배우셨죠?"

질문자는 침묵을 지키는 저에게 생각을 도와주고자 힌트를 주었습니다. 그 순간 번득 생각이 난 것은 고등학교 수학 정석에 나왔던 "큰 수의 법칙"이라는부분이었습니다.

"N수가 많아지면 정규분포의 폭이 √N 에 반비례해서 좁아진다."

수학 정석 이항분포, 정규분포에 나오는 문제입니다. 

1. 동전을 100번 던질 때 앞이 나올 확률과 표준편차는?
2. 동전을 10,000번 던질 때 앞이 나올 확률과 표준편차는?

문제 1의 경우,
B(100,0.5) => N(100*0.5, 100*0.5*0.5), 즉 평균은 100*0.5=50, 표준편차는 √(100∗0.5∗0.5)=√25=5
-σ~+σ = 45/100~55/100=0.45~0.55

[그림 1]




문제 2의 경우,
B(10000,0.5) => N(10000*0.5, 10000*0.5*0.5), 즉 평균은 10000*0.5=5000, 표준편차는 √(10000∗0.5∗0.5)=√2500=50
-σ~+σ = 4950/10000~5050/10000=0.495~0.505

[그림 2]


즉 동전을 100번 던지나 10,000번 던지나 앞면이 나올 확률은 50%인데, 표준편차가 적어지는 것입니다. N 수가 커지면 변동성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보험회사는 보험금을 맡아서 그 돈으로 자산 운용을 해서 수익을 냅니다. 그런데 사고가 날경우 고객에게 돈을 지급해야 하므로, 일정 금액은 지급준비금으로 비축해두고 나머지 돈으로 자산운용을 합니다. 이 때 지급 준비금은 사고율을 기반으로 책정합니다.

[그림 3]



예를 들어 평균 사고율이 10% 라고 합시다. 그런데 사고율이 10% 라고 하는 것은 사고율의 평균치입니다. 실제 사고는 10%-σ 에서 10%+σ 로 분포를 하겠지요. 보험회사는 10%만 지급 준비금으로 비축하는 것이 아니라, 10%+σ 를 비축하고, 나머지 돈만 자산운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림 4]



그런데 규모가 커지면 정규분포의 종모양이 가운데로 수렴하게 되니, σ 가 작아지면서, 자산운용을 할 수 있는 돈의 비중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 5]



ReInsurance 가 또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려는 것이 여기에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참을 버벅대면서 나름 열심히 풀었지만, 결국 이 회사에서 오퍼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최근 동아일보 착한병원 소개 코너에 어느 한 재활요양병원에서 재활치료 시간을 환자의 컨디션에 맞춰 탄력적으로 운영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치료 스케줄 조정에 대한 압박도 없다. 보통 병원에서 재활훈련을 받으려면 훈련실 이용시간, 치료사 스케줄 등에 맞춰 예약을 해야 한다. 예약한 시간이 지나면 한참 대기했다가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거동이 불편한 중증환자들에겐 큰 불편이다. 갑작스럽게 소변이 마렵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약속 시간을 불가피하게 조정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병원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입원실 앞 재활치료실에는 치료사들이 365일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원하는 때에는 언제든 훈련하면 된다."
- 동아일보, 착한병원

이 기사를 보면서 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자들을 위해서 착하게 운영하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해서 과연 경영이 가능할것인가?

물리치료실을 운영할 때 경영의 가장 핵심은 "부도율"입니다. 환자가 예약이 되어 있다가 펑크를 내게 되면 물리치료사가 놀게 됩니다. 물리치료사 인건비는 나가는데 물리치료 수가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를 부도라고 일컫습니다. 병원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총 치료 시간 중에 부도가 난 시간의 비율을 부도율이라고 합니다.

위의 재활병원 같이 운영을 하면 부도율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도율이 높아도 환자에게 서비스를 해주자는 순진하고 착한 마음으로 경영하는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는 병원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뭔가 요소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답은 병원의 규모에 있었습니다. 이 병언은 560병상의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병원에 비해서, 규모가 큰 만큼 환자의컨디션이 나빠 펑크를 내는 확률의 변동성이 적어집니다 (정규분포 종모양이 좁아집니다). 환자 요인에서 펑크를 내는 확률을 예측하기가 쉬워지니, 물리치료사 수를 거기에 맞춰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측이 가능하니 부도율이 오르는 것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규모를 키운 것이 병원 경영을 안정화 시키고, 그 혜택이 환자들에게 돌아가는 바람직한 시스템을 구축한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규모의 경제" 라고 하면 흔히 "규모가 커지면서 고정비가 희석되어 생산단가가 떨어지는 측면" 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변동성을 줄인다."는 측면도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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