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14일 일요일

1. 동네 의원끼리 치료비 의논해도 담합? [경쟁자와의 관계]

동네 의원끼리 치료비 의논해도 담합? [경쟁자와의 관계]

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분당에서 가장 상권이 좋은 미금역 사거리에서 소아정신과 개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은 건물 한층 아래층에서 개업하고 계신 모과 원장님과 병원 운영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원장님은 최근 병원 운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는 듯 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힘드실 만 했습니다.
길 건너편에 또 다른 같은 과의 경쟁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은 그동안 4층에서 한 점포를 임대해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5층을 전부 분양을 받아서 5층 전체를 병원으 만드는 확장 공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100평 수준에서 의원을 운영하다가 최근에 500평 수준으로 확장을 한 셈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셈이었습니다.

인근의 경쟁 병원이 공격적으로 확장을 하자, 저와 만났던 원장님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층의 200평 규모의 점포를 추가로 임대해서 수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투자를 통한 확장 경쟁이 붙은 셈이었습니다. 아마 그정도 투자하려면 아무리 업력이 있는 원장님들도 은행 대출 부담을 끼지 않고 진행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런데, 막상 확장을 해 놓았는데, 생각만큼 환자가 늘지 않았습니다.
저도 개업의를 하고 있어서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새로 인테리어를 해서 시설은 으리으리한데, 환자는 없고, 환자들 이용하라고 들여놓은 고급 커피 머신을 직원들이 이용하면서 노닥거리는 것을 보면 괜히 직원들이 미워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을 하곤 합니다.
그 원장님도 그런 심정인 듯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짜증 안내려고 억누르는 대신 본인의 마음은 곪아 가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원장님과 대화하면서 저는 두가지 포인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인근의 병원이 같은과라고 하더라도, 과연 진짜 나와 경쟁자 관계인지 확인을 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경쟁자라면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출혈경쟁을 피하고 담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첫째, "인근 병원이 나와 경쟁자인가?" 질문을 던져 봅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질문인가? 같은 상권에 위치한, 길 건너 같은 업종의 의원인데, 당연히 경쟁자이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경쟁자라는 용어를 "같은 고객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관계" 라고 정의내렸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잘 하면 저쪽 병원 환자들 빼앗아 올 수 있고, 저쪽 병원이 잘 하면 내 환자를 빼앗기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같은 구역에 있는 같은 업종이라도 경쟁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사례를 소개해 봅니다.

실제 저도 미금역 사거리에서 소아정신과를 개업하고 있었는데, 그 해 봄 무렵에 제 후배가 바로 길 건너에 소아정신과를 오픈했었습니다.
제 병원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옛날 같았으면 후배가 선배 병원 바로 옆에 개원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하던데 시대가 변해도 많이 변한 것 같더군요.
후배가 제 병원 바로 옆에, 똑같은 업종으로 개업을 하는 소식을 듣고 제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었습니다.
기분도 좋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내 환자들이 그 병원으로 일부 이동을 한다면 어떻게 하나 긴장을 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개업을 하고 나서 한달 정도 지나면서 저는 안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환자들이 그 후배에게 안가더군요.
저에게 방문하는 환자들은 제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독특성 때문에 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 후배가 따라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반면 그 후배에게 가는 환자들은 인근의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새로 개업했다고 소개해주는 환자가 대다수였습니다. 저도 서울대 병원 출신이지만, 인근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는 제가 찍혔었는지 저에게 보내주는 환자는 이전에도 별로 없었으니, 그 후배가 개업했다고 해서 제 병원 경영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입소문으로 오는 환자들이었고, 제 후배에게 가는 환자들은 대학병원에서 보내는 환자들이었던 것이지요.
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는 경로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후배 병원의 환자가 늘었다고 제 환자가 줄지 않았고, 제 환자라 줄었다고 후배 병원의 환자가 느는 것도 아닌 이런 관계이니 같은 상권이라고 해서 경쟁 관계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환자가 병원을 알고 오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이런 경우는 개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후배 병원은 새로 지었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깨끗하고 럭셔리했습니다.
초반에는 저도 인테리어를 리모델링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시 저와 만났던 원장님 병원 쪽으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저는 그 원장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님은 두개의 병원을 경쟁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지만, 환자의 유입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리서치가 필요하므로 그 의견은 받아들이고 경쟁 관계로 간주하고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두번째 문제인 경쟁관계 병원끼리 담합을 할 기회를 찾는 문제로 생각을 옮겨 봅시다.
상대 병원 원장님과 얼마나 자주 만나시는지 여쭤 보았습니다.

서로 원수 지간인 듯 했습니다.
개업할 때 지역 의사회에서 한번 만난 이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상대 원장님 얼굴 보기 싫어서 지역 의사회도 안나가신지 오래 되셨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례가 의사 사회에서 흔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쟁 관계일수록 서로 자주 만나는 것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매우 필요합니다.

A 와 B 라는 경쟁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두 경쟁자는 같은 상품을 둘 다 1000원에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 점유율은 A 가 70%, B 가 30% 라고 합시다.
같은 가격인데 왜 차이가 나느냐구요? A 가 시장에 먼저 들어온 First mover 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 둡시다.
B 입장에서 A를 뛰어 넘는 방법을 고민하겠지요. 이 때 여러가지 방법을 쓸 수 있는데, 가장 허접한 방법은 가격을 인하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서로 손해를 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B 가 가격을 900원으로 낮추었다고 합시다.
A 와 B 가 동일한 상품을 판다고 가정을 하면, 기존에 A의 고객들은 가격이 싼 B 상품을 사는 쪽으로 이동을 할 것입니다.
기존의 A의 70% 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A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가격을 낮추겠지요.
A는 가격을 800원으로 낮춥니다.
그것을 보는 B 는 700원으로 가격을 낮추고, 다시 A는 600원으로 낮추겠지요.
결국 A 와 B 는 같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런 식의 경쟁을 가격전쟁 (price war)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례는 항공 산업에서의 티켓 가격 경쟁 사례, 제철 산업에서 철강 생산량 증대를 통한 가격 경쟁, 통신산업에서 통신비 경쟁 사례 등 여러 산업 영역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가격 경쟁으로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는 산업의 경우 서로 경쟁은 하되 가격 이외의 부분에서만 경쟁을 하는 식으로 암암리에 산업계 내부의 룰이 형성되곤 합니다.

근제 만일 경쟁관계에 있는 두 회사의 사장이 호텔에서 같이 만나 밥 먹으면서 "우리 가격은 1000원으로 유지하고 싸우지 말자." 라고 대화를 했다고 칩시다. 그게 만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발각이 되면 엄청난 범죄로 간주됩니다. 심하면 징역을 살 수 있는 큰 범죄입니다.
자율경쟁이 시장 질서의 근본 원칙으로 간주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담합은 체제를 흔드는 무서운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담합을 하는 것은 범죄이니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담합을 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그널을 보내는 것입니다.
제철 산업을 예로 들어 봅시다.
매해 신년 초기에 우리나라 철강 생산량의 1위를 자랑하는 포스코는 신문에 해당년도 철강 생산 계획 유모를 공고합니다.
이 공고 왜 할까요? 누구 들으라고 하겠습니까?
일반 소비자가 포스코가 철강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이 공고는 바로 경쟁업체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생산할터이니 너희들은 알아서 생산량을 조절해라. 괜히 너무 많이 생산해서 생산 과다로 가격 폭락이 일어나면 혼난다."

서로 "우리는 얼마 생산할 테니 너희는 얼마만큼만 생산해라." 라고 약속을 한 적이 없으니 담합 한 적은 없는 셈이지요.
그냥 우리는 사실을 공표했고, 경쟁자들은 그 사실을 보고, 알아서 생산량을 조절했을 뿐입니다.
이런 식의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많은 산업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생 전략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들은 중세 시절 부터 길드제도라는 것을 누려왔습니다.
이 길드제도는 지금도 남아있지요.
우리가 수련의, 전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 길드 제도의 apprentice 제도의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 기술을 익히는 수련 과정이기도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선배들에게 제공하는 5년의 수련기간을 제공함으로써 그 전문가 단체에 입문하는 값을 치루는 것이지요.

길드 제도는 apprentice 제도 말고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독점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의 대장장이 들이 있는데, 타 지역의 대장장이가 우리 지역에 들어와서 장사를 하면 길드 회원들이 몰려가 그 가게를 부숴 버렸다고 합니다. 이는 경쟁이 과해 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함으로 인해 공급의 과잉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의사 협회, 지역 의사 협회 같이 의사들의 학술단체, 친목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는 같은 업종으로 개업하고 있는 의사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학술 회의를 통해 공부를 하는 기능이 주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는 길드의 근본 기능이었던 "동업자들의 권익 보호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의 경쟁 병원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서 친해졌다 칩시다.
"요즘 시술 가격이 자꾸 떨어져서 걱정이에요. 이렇게 싼 가격으로 시술을 한다면 재료를 얼마나 허접한 것을 쓸지 걱정이에요. 나는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것 보다 의사로써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요. 가격을 합리적으로 받고 대신 좋은 재료를 쓰고 시술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하고 환자에게 설명을 충분히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좋은 의사라고 생각해요." 라는 얘기를 한다고 합시다.
그 얘기를 듣는 경쟁 병원 원장님은 여러가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 상대 병원 원장님은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으시구나. 내가 가격을 낮추다가는 업계에서 욕을 먹겠구나." 등등.
이러면서 암암리에 가격 경쟁을 피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두 경쟁관계의 원장님도 자주 만나서 자주 얘기했다면,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통한 확장 경쟁을 안하고도 현재의 병원 경영을 잘 해 나가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가까운 위치의 원장님들끼리 서로 골프도 치고, 맥주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경쟁자에게 노골적으로 우리 가격을 200만원으로 유지하고 내리지 맙시다. 라고 제의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명백한 담합행위이고, 이는 형사처벌도 가능한 무서운 범죄 행위입니다.
대신 같이 술자리를 하시면서 자신이 가진 의사로써의 소신을 얘기하십시오.
"나는 너무 상업적으로 가고 싶지 않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면서 거기에 정당한 가격을 매기고 싶다. 그렇게 해야지 너무 가격을 출혈 경쟁을 하면 진료의 수준이 떨어지고 그것이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는가. 나는 의료의 상업화를 반대한다. 나는 숭고한 의사로써의 철학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진료를 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전달하면 경쟁다는 아 이 선생님은 가격을 낮추거나 출혈 경쟁을 하지 않겠구나. 하면서 안심을 하겠지요. 그러다 보면 경쟁 병원도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안심을 할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는 것이 환자에게 그리고 우리 병원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될 것이입니다.

그냥 자주 만나시고 친해지시고,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시는 것으로도 충분히 담합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가격 출혈 경쟁을 막고, 그러면 합리적인 가격을 형성하고, 그러면 결국 환자들에게 저가로  진료하면서 저질 진료를 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거든요.
그게 우리 사회의 의료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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