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제 병원에 어떤 컨설턴트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면 제 병원의 마케팅을 개선해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매우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름 저를 방문하기 전에 제 병원의 홈페이지에 대한 많은 분석을 하고 왔더군요.
현재 홈페이지의 방문 수(Traffic)가 얼마고, 클릭(Click) 수가 얼마인데, 방문 수 당 클릭 수가 적은 것은 매력이 없다는 뜻이라는 이야기도 했었고, 홈페이지에 고객 예약 시스템이 없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제 홈페이지가 마치 난도질을 당하는 느낌이어서 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 병원을 인수한 상황이었고, 그 병원의 홈페이지는 이전 원장님이 10년 전에 만든 것이었습니다. 10년전에 만든 홈페이지이니, 현재의 트랜드에 비하면 낙후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저 역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홈페이지를 개편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 바빠 개편할 엄두가 나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다 맞았고, 홈페이지를 개편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 부터 하고 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시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제 병원의 홈페이지를 개편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컨설턴트는 저에게 "이렇게 하면 병원 운영이 점점 어려워 질 수 있으니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 MBA 까지 하셨다는 분이 왜 이런 작은 결정을 못하시냐?"라며 일침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름 MBA 를 했다고 경영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내가 왜 홈페이지가 낙후된 상태에서 개편하자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 나는 과연 홈페이지 개편 비용이 아까와서 우리 병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투자를 못하는 소탐대실을 하는 것일까?
근데 좀 생각해 보니, 저의 의사결정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병원은 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신환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는 4주를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이 이미 성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홈페이지를 개선해서 신환이 더 많이 와 봤자, 4주 걸려서 저를 만나는 것이 6주 걸려서 저를 만나게 되겠지요. 대기 시간만 더 길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지, 실질적으로 병원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병원은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아직 환자 수가 병원이 소화할 수 있는 capacity 보다 적어서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병원.
2. 환자수가 병원이 소화할 수 있는 capacity 보다 많아서 오는 환자를 더 효율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병원.
저는 그 컨설턴트가 찾아오기 2년 전인 2008년에 병원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저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엄청난 대출을 해서, 병원은 오픈했는데, 환자가 안와서 파리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홈페이지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저는 거금 1000만원을 들여서 홈페이지를 당시로써는 최신식으로 만들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정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싶습니다. 아마 홈페이지 업자의 달콤한 언변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홈페이지업자가 얘기하는 것이 다 그런가 보다 싶어 큰 돈을 쓰곤 했습니다.
환자 예약이 없는 날에 병원에 나가 앉아있으면 직원들에게 짜증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발견하면서, 병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꿎은 직원들만 불쌍하기도 하고, 자칫하면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려 오는 환자 마저 떨어뜨릴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 중 한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인근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들을 무턱대고 만나, 학부모 상대로 교양강좌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드리곤 했습니다. 소아정신과는 그런 강좌를 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떤 내용으로 강좌를 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어필 하곤 했습니다.
마치 영업 사원이 된 것 같아 쑥쓰럽기도 했지만, 병원이 망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그럴 용기가 있었던 것은 제약회사 다닐 때 영업활동을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교감 선생님은 강의를 어레인지 해 주기도 하셨고, 어떤 분들은 강의는 거절했지만, 그래도 "내 평생 의사가 이런 식으로 와서 세일즈 하는 것은 처음봤다. 우리 학교의 정책 상 강의는 열어줄 수는 없지만, 당신 내가 볼 때 성공할꺼야." 하면서 격려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병원을 개업했을 당시는 제 병원은 첫번째 케이스인 환자 수가 병원 capacity 보다 적어서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단계였습니다.
외부에 내 병원을 알리고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외부에 홍보하는 방법으로는 홈페이지를 잘 활용하고, 네이버 키워드 광고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외부에 강의를 하러 나가는 것도 좋은 수준높은 홍보 수단인 듯 합니다.
그 밖에 잡지 같은 곳에 광고를 한다던가, 신문기자를 활용해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던가 하는 방법들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되더군요.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원장이 매우 부지런해서 매일 글을 하나씩 쓸 자신이 없는 다음에야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해준다고 찾아오는 업체를 함부러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들은 무책임하게 아무 컨텐츠를 베껴서 블로그에 올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의사가 환자에게 친절하고, 설명을 잘 하고, 성실하다면 병원은 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목이 좋고 안좋고에 따라서 3개월만에 자리를 잡는냐, 6개월만에 자리를 잡느냐, 아니면 1년이 걸려서 자리를 잡느냐 차이인 것 같습니다. 1년이 걸려서도 자리를 못 잡았다 싶으면 자리 탓 보다는 본인의 진료 스타일이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진료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부인이나,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잠깐 얘기가 샜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병원이 점차 성장을 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병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찾아오는 환자 수가 병원이 처리할 수 있는 Capacity 를 넘기게 되면, 이제는 대기 환자가 생기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외부에서 환자를 더 유치하는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대기가 걸려 있을 경우, 환자를 더 유치하면 대기 시간만 더 길어지게 되겠지요.
이 때는 외부에서 환자를 더 오도록 마케팅을 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이미 온 환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병원의 경우 입원실은 항상 Full bed 입니다. Full bed 가 아니더라도 5% 정도의 빈 침상이 있는 수준이겠지요.
서울대 병원에 진료를 보려면 최소 1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고, 그 보다 빨리 보려면 빽을 써야 합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제가 레지던트 할 때는 그랬습니다.)
의사를 만나서 입원 및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나도 그때부터 또 1,2주는 기다려야 병실이 났다고 연락이 옵니다.
이런 경우 외부에 환자 더 오라고 마케팅을 하기 보다는 진료의 효율을 올리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겠지요.
실제로 대학 병원들은 평균 재원 일수를 줄이려고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어떤 대학병원 원장님에게 들은 건데 평균 재원 일수를 6일 이내로 맞추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군요.
90년대 후반 PACS, OCS 등을 도입한 것이 그 노력의 시작 단계였고, 지금은 대수술을 하고 나서 "아직 불안하니 퇴원하기 싫다. 좀 더 회복된다음에 퇴원하고 싶다."고 애원하는 환자들도 매몰차게 퇴원을 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상한가요?
입원료를 내고 있겠다는 사람을 굳이 왜 퇴원을 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퇴원을 하면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병실이 바로 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병원들은 항상 full bed 이기 때문에 입원료 수입은 고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 한명이 10일을 입원했건 5일을 입원했건 검사료와 수술비용은 똑같이 내지요.
그렇다면 10일에 1명을 받는 것보다 10일에 2명의 환자를 받을 때 병원 수입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재원 일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사례로, 삼성병원의 예를 들어봅시다.
삼성병원은 얼마전 (2012년 쯤으로 기억됩니다만), 경영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3차 병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1, 2차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들은 1,2차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의료 전달 체계에 맞는 3차 병원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공익적인 측면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수익이 떨어지는 경증 환자들을 줄이고, 그 시간에 수익이 큰 중증 환자들로 환자군을 바꾸겠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삼성병원 관계자에게서 그런 의도였다고 들은 것은 아니므로, 그런 의도였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정책으로 단위시간당 수익이 큰 환자들로 환자군이 바뀌는 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이 아닌 일반 비즈니스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돈 안되는 고객들 보다 돈되는 프리미엄 고객을 유치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환자가 이미 많아서 대기 환자가 생기는 경우, 보다 효율적인 경영을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 나가는 것은 중요한 경영관련 의사결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개인 병원에 적용하는 방안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제 병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 병원에 환자가 오는 경로를 살펴 봅시다.
환자들은 우선 네이버에서 소아정신과를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네이버의 링크를 따라서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고, 홈페이지 내용을 읽어보게 됩니다.
홈페이지 내용이 다른 경쟁 병원들보다 마음에 들 경우, 병원으로 전화를 걸고, 예약을 합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기까지 2주 정도 대기를 해야 합니다.
2주가 지나서 겨우 의사를 만나 초기 상담을 하고 나면 정확한 진단을 위한 심리검사를 해 보자는 권유를 받습니다.
또다른 1주를 기다려서 심리검사를 받고, 다시 1주를 기다려서 의사를 만나서 심리검사 결과를 상담을 받습니다.
이 때 의사는 진단명을 알려주고, 약물처방 이나 놀이치료, 심리치료 등을 권유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환자가 예약을 하고, 치료에 들어가게 될 때 까지 4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니 우리 병원이 환자들의 대기 시간은 길지만 모든 단계에서 Capacity 라 초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사를 만나는데 2주가 걸리고, 심리검사에 1주가 걸리니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는 이미 full capacity 를 넘었지만, 치료실은 실제로 60% 정도밖에 가동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가 병목현상을 만들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병목현상이라는 말을 쓰면 이해가 가시나요?
운전은 하다 보면 차가 막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짜증을 참고 가다 보면 사고 현장이 나오고, 그 현장을 지나면 오히려 차가 쌩쌩 달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병목을 이루는 곳은 막히지만 그 이후 단계에서는 도로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보다 자동차 수가 적은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럴 경우 병목을 풀어주는 것이 교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교통에서는 사고 차량을 빨리 치워 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가 병목을 형성하고 있다면, 의사 수를 늘리고, 심리검사 전문가 수를 늘리는 것이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리검사 전문가를 기존의 2명에서 4명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의사를 한명 더 구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실제 그 두가지의 의사결정으로 제 병원은 30~40%의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해 진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병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그중 하나는 환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병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병원입니다.
- 무턱대고 마케팅을 한다고 홈페이지 개편하는데 투자를 하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환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병원은 홈페이지 같은 외부 환자를 유치하는 마케팅에 투자를 하는게 좋은 방법입니다.
- 반면 환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병원은 오는 환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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