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5일 수요일

4. 푸시마케팅 vs 풀마케팅

마케팅 방법 중에 푸시마케팅(Push marketing)과 풀마케팅(Pull marketing)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 푸시마케팅은 공급자가 상품을 밀어낸다”, 즉 공급자 주도의 마케팅이라면,
  • 풀마케팅은 수요자가 상품을 끌어 당긴다”, 즉 수요자 주도의 마케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의료시장에서 약이 처방되는 경우는 대표적인 푸시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급자인 의사가 약을 처방하면, 고객인 환자는 그 약이 어떤약인지 따지지 않고 의사를 믿고 복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약의 처방도 풀마케팅인 경우가 존재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문의약품의 TV광고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전문의약품 TV광고를 보다 보면, 마지막 부분에 "당신의 주치의에게 푸로작을 처방해 달라고 요구하세요." 라는 멘트가 나옵니다. 소비자(환자)에게 상품을 각인시키고 공급자(의사)에게 가서 그 약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하도록 만드는 식입니다. 소비자가 상품을 선택하는 상황이니, 풀마케팅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을 구매 할 때 일반적으로 두 단계의 인지적 과정을 거칩니다.
  1. 첫째 단계는 상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단계, 즉 니즈가 생기는 단계입니다.
  2. 둘째 단계는 "여러 브랜드의 상품 중 어떤 브랜드를 살 것인가" 결정하는 단계입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을 가기 전에 "배가 고파서 밥을 먹겠다."고 생각을 해야 하고, 그 다음에 "무슨 메뉴를 고를 것인지" 결정하계 되는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푸시마케팅은 니즈가 형성이 되지 않은 소비자에게 니즈를 설득하고 판매하는 식이니 위의 두 단계 중 첫째 단계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풀마케팅은 니즈는 이미 있는 고객에게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판매하는 식이니 둘째 단계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푸시마케팅과 풀마케팅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보험 영업과 외제차 영업을 비교해봅시다.
저는 보험 상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이중 어느 하나도 제가 먼저 보험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가입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보험에 가입한 경로는 대충 이렇습니다.
1.      동창회에 나갔다.
2.      별로 학창시절 기억도 안 나는 한 친구가 괜히 친한 척 한다.
3.      연락처를 준다.
4.      하루는 그 친구가 전화가 와서 병원 구경하러 온다고 한다.
5.      같이 식사 하던 중 보험 상품 얘기를 하게 된다.
6.      친구 사이에 차마 매몰차게 거절하기 어려워 보험 상품 하나를 가입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경로로 보험을 가입했을 것입니다. 보험 영업은 소비자가 니즈가 형성이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공급자 (영업사원)이 소비자에게 니즈를 설득하고, 판매하는 시스템입니다. 공급자 측에서 주도하는 대표적인 푸시마케팅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즈 조차 형성 안되어 있는 소비자에게 당신 이런 상품이 필요하잖아.” 설득부터 시작해야 하니 매우 어려운 영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보험 영업을 해 본 사람은 어디 가서 굶어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 외제차 딜러를 생각해 봅시다. 딜러는 외제차 매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들어오는 손님을 맞이합니다. 외제차 전시장에 들어오는 손님은 둘 중 하나입니다. 최근 승진 하고 연봉이 올라, 외제차를 한번 타 볼까 생각하는 사람과 외제차를 리스로 타고 있는데 곧 리스가 끝날 때가 되어 가는 사람. 이들은 가까운 시일 내에 보나마나 외제차를 하나 살 예정인 사람들입니다. 이미 첫째 단계인 니즈가 형성 되어 있는 상태에서 둘째 단계인 어떤 브랜드의 차를 살지 결정하면 되는 사람들입니다. 영업사원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 제품보다 우리 회사 제품이 더 좋다."라는 설득만 하면 됩니다. 보험 상품을 팔 때보다는 훨씬 수월한 셈입니다. 소비자가 주도를 하니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겠지요.

풀세일즈를 푸시세일즈로 전환시켜 보다 많은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업세일즈 (Up Sales)라고 합니다.
어느 중년의 부인은 외국에 유학 가 있는 딸에게 송금하러 은행을 방문했습니다. 이 때 은행 직원은 해외송금 일을 처리하다가, 한마디를 던집니다. "어머 따님이 곧 시집가실 때가 되셨겠네요. 따님의 주택 마련을 위한 펀드 상품 좋은 것 하나 있는데, 강남의 부자들이 요즘 선호하는 상품이에요."

만일 여기서 은행 직원이 외환 송금 업무만 했다면 고객의 니즈에서 시작된 거래이므로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펀드 판매의 경우 고객이 니즈가 없었는데, 은행직원이 니즈를 환기시키고 판매를 했으니 푸시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직원은 풀세일즈 상황을 푸시세일즈 상황으로 전환시키고 영업을 성공시켰습니다. 은행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직원이지요.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대해서 진료를 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풀세일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진료 상황에서도 풀세일즈 상황을 푸시세일즈로 전환시키는 상황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몇몇 예를 들어봅니다.
  • 소아과 선생님들이 감기로 내원한 15세 여자 청소년을 진료하다가,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을 것을 권유한다.
  • 소아정신과 선생님이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찾아온 아이가 ADHD로 진단되자 약물치료와 사회성치료를 권유한다.
  • 치과 선생님이 틀니를 하러 온 환자에게 임플란트가 더 낫다는 것을 권유한다
  • 치과 선생님이 충치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아말감 보다는 금으로 때우는 것이 더 좋다는 설명을 한다.  
  • 피부과 선생님이 보툭스 맞으러 온 환자에게 주름 있는 곳의 점은 종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으니 빼자고 권유한다.
이런 경우들은 환자가 니즈가 없는 상태에서 의사가 새로운 상품을 권유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보험 세일즈와 같이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니즈를 설득하고 처방을 해야 하니, 한단계 더 어려운 영업인 셈입니다.
소아정신과 환자들을 진료하는 저로써도 이 경우 말이 잘 안떨어지곤 했습니다. 사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의학적 치료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으로는 내가 마치 돈을 벌려고 더 비싼 상품을 권유한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하는 어색함이 들었습니다. 권위있는 의사가 아니라 마치 영업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이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가 시도했던 한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저는 병원 대기실에 환자들에게 권유해야 할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 글들을 많이 걸어두었습니다. 놀이치료의 효과, 사회성치료의 효과, ADHD 약물치료의 효과 등등. 이런 글들을 제가 직접 칼럼을 써서 액자에 걸어 두었습니다. 환자분들이 기다리면서 읽으시기를 유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병원에 들어올 때는 딱히 니즈가 없던 환자분들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니즈가 환기되어 진료실로 들어오도록 유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험 상품을 살 때의 고객에서 외제차를 살 때의 고객으로 탈바꿈 한 상태로 진료실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생판 처음 듣는 것 보다 미리 읽어본 상태에서 그 치료방법의 필요성을 설득할 때 환자들의 수용성이 훨씬 높아지게 되더군요

2013년 12월 13일 금요일

3. 마케팅은 ‘땅 따먹기’... 판을 흔들어라 [인지적지도, Cognitive Map]

"마케팅 불변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MBA 탑스쿨들에서 마케팅 시간에 교재로 사용할 만큼 마케팅 영역에서는 명서로 꼽히는 책입니다. 마케팅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마케팅의 기본 개념을 쉽고 단순하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 책에서 한가지 강하게 기억이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우편 배달 회사인 FedEx  DHL 의 마케팅 전략 케이스입니다. FedEx 의 마케팅 문구는 “밤새 배송되는 우편 (Overnight Letter )” 입니다. 이 문구를 읽는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는 자연스럽게 우편 배달 시장의 지도가 그려집니다
", 세상에는 밤새워 빠르게 배송하는 회사도 있고, 낮에만 배송하는 느린 회사도 있구나. 그중에 FedEx 는 빠르게 배송하는 회사구나."

[그림 1]



한편 후발 주자인 DHL  마케팅 문구를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는 우편 (Worldwide Express)”로 홍보했습니다
기존에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형성된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는 후발주자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좀처럼 바뀌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DHL 은 기존의 “빠른 배송 ↔ 느린 배송” 이라는 축 상에서 1위인 FedEx 와 경쟁하기 보다는 새로운 축을 그렸습니다. 그 것은 “세계 곳곳으로 배달 ↔ 한정된 지역으로 배달” 의 축이었습니다.
DHL  "세계 곳곳으로 배달되는" 이라는 문구를 접한 소비자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우편배달시장과 관련된 인지적 지도를 변경을 하게 됩니다. ", 배송회사는 빠른 회사와 느린 회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배달하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있구나.  그리고 DHL 은 세계 곳곳으로 배달하는 회사구나."

[그림 2]

 

“마케팅 불변의 법칙”에서 주장하는 바는 한번 소비자의 머리 속에 형성된 인지적 지도는 후발주자가 바꿔 놓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형성된 축 상에서 1위 자리를 두고 다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차라리 새로운 별개의 축을 개척해서 그 축에서 1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났다는 것입니다
FedEx 가 소비자의 머리 속에 그려 놓은 “빠른 배송 ↔ 느린 배송” 의 축 위에서 놀지 않고, 새로운 축,  “세계 곳곳 ↔ 한정된 지역” 의 축을 그리고 그 위에서 1위를 한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그려 넣는 가상의 지도를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라고 합니다. 이 지도 상에서 내 제품의 영역을 얼마나 많이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 마케팅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땅 따먹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요즘 즐겨 찾는 싸이트 하나를 소개합니다. TED.com 라는 곳인데 거기서 본 마케팅 전문가의 강의에서 들은 내용 하나를 소개합니다

아타투르크 왕은 터어키 근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왕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자들이 베일을 쓰지 않도록 해야 터어키가 근대화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무턱대고 금지하면 이슬람 전통이 강한 국민들이 반발을 하게 되어 정치적 지지를 잃을 것을 걱정했습니다. 고민 끝에 나온 아타투르크의 해결책은 “창녀들은 반드시 베일을 써야 한다.”는 법을 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여자들이 베일을 벗게 되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가져왔다고 합니다.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국민들의 기아를 해결하고 빵 가격의 폭등을 막기 위해 감자를 보급하고 싶었습니다그런데 국민들은 감자가 “흙 속에서 나는 지저분한 음식이자 개한테 줘도 안 먹을 음식”으로 인식하였습니다프리드리히 대제가 고안한 것은 “감자는 왕실 야채이고 왕족만 먹을 수 있다.”는 법령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감자를 몰래 재배하기 시작했고 점점 사용량이 늘었다고 합니다.

이 두 사례는 인지적 지도를 잘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지도 상에서 영역을 구획하는 선을 긋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어디에 속할지 선택하게 하는 전략입니다.

의사 출신이자 벤처기업가인 안철수 의원이 하는 행보를 보면 인지적 지도를 활용하는 데에 대단한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벤처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경험에서 마케팅 개념을 체득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안철수 의원이 들고나온 화두는 “새 정치” 입니다이 단어는 인지적 지도의 영역 싸움에 엄청난 선을 긋는 단어입니다. 기존에는 유권자들은 정치에 관한 인지적 지도 상에서 “보수 ↔ 진보”, “좌  ↔ 우”, “권위주의  ↔ 자유주의” 등의 축을 그리고 그 위에 정치인들을 배치하곤 했습니다. 유력 일간지에도 대통령 후보가 될 만한 유력 정치인은 좌와 우 축을 그려두고 각 정치인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분석하는 내용의 기사를 내 보내기도 합니다. 일례로 아래 그림은 한겨레 21 2010 3월에 실린 지도입니다.

[그림 3] 한겨레21 2010-03-05



그런 정치판에서 안철수 의원은 “새정치”라는 단어를 던짐으로 기존의 모든 정치인을 “구시대 정치인”으로 몰아넣고 자신은 새시대의 정치인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차지하는 엄청난 도전을 했습니다이 시도가 성공적일지는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도가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인지적 지도를 멋지게 활용한 사례임은 분명합니다.

최근에 의료계에서는 각 치료 과들이 이름을 개명하는 사례가 많은 듯 합니다.
나름 각 과의 선생님들이 많은 고민과 철학이 담겨있는 개명이었겠지만, 저는 “인지적 지도” 라는 개념을 토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소아과”에서 “소아청소년과”로
최근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개명을 했습니다. 이 개념은 의료 시장을 “나이”라는 축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모든 과는 대상 환자를 나이로 구분하는데,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소아과나이가 많이 든 사람들은 내과 및 다른 과로 가는 것이다그런데 나이가 어정쩡한 청소년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내과를 갈 것인가그러지 말고 소아과로 와라. 
인지적 지도상에서 보면 이런 의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림 4]


“산부인과”에서 “여성의학과”로
최근 산부인과는 여성의학과로 개명하려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소극적으로 해석하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산부인과에 방문하도록 배려한 흔적이 보입니다.
좀 더 공격적으로 해석하면세상의 환자들을 남자 환자와 여자 환자로 나눈 것입니다. 기존에는 임신/출산과 관련 있는 여성만 진료하다가, “세상의 환자들 중 50% 가 되는 여자들을 다 진료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림 5]



“진단방사선과”에서 “영상의학과”로
진단방사선과가 영상의학과로 바뀐 사례도 이런 구획 나누기의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단방사선과라는 이름을 두고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과는 “진단과”와 “치료과” 두 가지로 나뉩니다. 그리고 “진단과”는 다시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과”와 “방사선과 관련 없는 진단과” 로 나뉩니다. 진단방사선과라는 이름은 이 중에서 “방사선을 이용한 진단과” 라는 영역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영상의학과”라는 이름으로 개명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진단과에 머물지 않고 치료과로 확장하며, 방사선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영상을 다 다루겠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그림 6]



“정신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로
최근에 정신과 역시 정신건강의학과로 개명을 했습니다
기존의 정신과라는 이름 속에는 정신병을 치료하는 과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정신병이라 함은 정신분열병, 우울증 등 심각해 보이는 질환을 떠올리기 쉽습니다여기에 정신건강이라는 이름을 넣음으로써,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 스트레스, 부부갈등, 학업문제 등의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듯 합니다

[그림 7]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인지 지도 상에 새로운 축을 그려놓고, 선긋기를 해서 내 영역을 차지하는 과정이 마케팅의 핵심입니다. 이를 인지적 지도 (Cognitive Map) 상에서의 땅따먹기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끝으로 요양병원을 운영하면서 했던 저의 고민을 소개합니다
저는 요양병원을 준비하면서 한 일년 정도 기존의 요양병원들을 돌아다니면서 탐방을 했습니다. 기존의 병원들을 구경하면서 공부를 한 셈이지요

그 때 얻은 결론은 기존의 요양병원 시장에는 인지적 지도상 두 가지 축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비자인 환자들은 요양병원을 선택할 때 가격을 보고 결정하는 면이 강했습니다. 즉 소비자들은 인지적 지도 상 요양병원을 "싼 병원 ↔ 비싼 병원" 이라는 축을 그려두고 그 축 상에서 병원들을 매핑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공급자인 요양병원 원장님들의 머리 속에 그려진 축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많은 요양병원들의 웹싸이트를 들어가 보면 많은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구는 "어르신들을 부모님과 같이 잘 모시겠다."는 문구 즉 "효심" 이었습니다또 요양병원의 이름도 서울 효 병원이라는 식의 라는 단어를 많이들 넣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원장님들의 머리 속에는 요양병원 시장을 "효심이 큰 병원 ↔ 효심이 적은 병원" 이라는 축을 그려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이 효”"이라는 단어는 서비스의 친절함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기존에 존재하던 가격축과 효심축 말고 다른 새로운 축을 하나 멋지게 그려 놓고 거기서 1등을 차지하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해 낸 문구는 "젊고 열정 있는 의사들" 이었습니다이 문구를 통해서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젊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병원 ↔ 나이 많은 의사들이 진료하는 병원이라는 새로운 축을 그려 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 상에서 우리병원은 젊은 의사들이 열정을 가지고 진료한다.”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마케팅의 메시지를 집중했습니다.

[그림 8]




이 마케팅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소비자들의 머리 속에 그려져 있는 인지적 지도를 이해하고, 그 지도 상에서 내 영역을 어떻게 넓혀갈 수 있을지 고민할 때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2013년 11월 25일 월요일

2. 오렌지족은 왜 에비앙을 마시나 [Business Definition]

우리는 무엇을 파는가? (Business Definition)

우리나라 맥주가 세계에서 제일 맛 없다는 사실이 이코노미스트 기자에 의해 신랄하게 비판 받은 일이 있습니다. 더 치욕적인 사실은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도 맛없다고 평가받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대동강 맥주를 마셔본 분들 말로는 대동강 맥주가 북한맥주라고 얕볼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제법 맛있는 맥주랍니다. 저는 유학 시절에 보스턴 특산 맥주인 새무엘아담스를 즐겼었고, 필리핀 여행가서는 산미구엘을 즐기기도 했었습니다. 최근에야 대형마트에 가면 수입 맥주들이 진열되기 시작했고, “세계맥주라는 프랜차이즈 맥주집도 생기면서, 비로소 산미구엘이나 새무엘아담스 등을 즐길 수 있게 되어 행복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전인가요? 흥미로운 신문기사 하나가 났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상표를 가린 맥주를 제공하고 맛을 평가하게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더니, 수입맥주에 비해서 국산맥주를 더 선호하더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입니다. 이 기사를 보니 이 연구 혹시 국내 맥주회사들이 후원한 연구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근거가 없으니 뭐라고 말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국내 맥주회사들이 아래와 같이 주장을 할 수는 있겠다 싶었습니다. “소비자들이 국산 맥주는 맛 없다고 느끼고, 수입 맥주는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실제 수입맥주가 맛이 좋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마케팅의 결과일 뿐이다.”

저는 이 글에서 국산 맥주 맛이 수입 맥주 맛 보다 좋은지 나쁜지 여부를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아닙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점은 우리가 맥주를 구입할 때 단순히 맥주 음료 그 자체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맥주 음료 뿐 아니라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를 구매함으로써 경험을 구매한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한가지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제가 대학 2학년 시절이던 1992, 우리나라에는 오렌지족이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일보에서 오렌지족 유행 현상에 대해 연재를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지금까지 기억이 남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오렌지족들은 그랜저를 끌고 다닌다. 그 그랜저에는 현란한 스티커가 많이 붙어있다. 스티커를 붙이는 이유는 부모님 차를 빌려서 끌고 나온 것이 아니라 자기 차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들은 한 손에 에비앙 생수통을 들고 다니면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서 지나가는 아가씨들에게 손을 지른다. “야 타!”

여기서 오렌지 족들이 왜 에비앙 생수병을 들고 다녔을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에비앙 생수는 2,000원 정도 합니다. 경쟁 상품으로 500원짜리 제주 삼다수가 있습니다. 이 둘은 편의점에 가면 나란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왜 오렌지족들은 500원이면 살 수 있는 삼다수를 놔두고 2,000원짜리 에비앙을 선택했을까요? “돈 귀한 줄 모르는 골 빈 부자집 자식들이라고 치부한다면, 당신은 비즈니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소비자는 나보다 똑똑하다. 그들이 소비할 때는 이유가 있다.”

오렌지족들이 갈증해소를 위해서 에비앙을 구매했을까요? 갈증해소를 위해서는 500원짜리 삼다수로 충분합니다. 그러니깐 이들이 지급한 2,000원 중에 500원은 갈증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1,500원 가치는? 에비앙이 뭔가 1500원 정도의 가치를 제공하니 구매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삼다수는 대장균이 더 많을 거야. 적어도 프랑스 같은 선진국 제품이니깐 대장균이 덜 들어있을거야.” 하는 식으로 제품의 질에 대한 막연한 믿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면 삼다수의 품질은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우수합니다.) 이 믿음에 동의할 수 없다구요? 저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에비앙의 품질을 신뢰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 아이가 젖먹이일 때 중국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아이 분유를 타기 위한 생수를 사러 편의점에 갔습니다. 이름 모를 중국 브랜드 생수와 한국에서는 비싸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에비앙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에비앙에 손이 가더군요. 에비앙은 전세계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듦으로써 신뢰성을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 여행 온 외국인들은 에비앙과 삼다수 사이에서 제가 중국 여행시에 느꼈던 생각으로 에비앙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오렌지족들이 에비앙을 사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비앙을 들고 다니면 우리집에 돈 많거든하는 자랑을 구차하게 제 입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에비앙을 들고 다니면, 뭔가 외국 물을 먹은 사람 같고, 뭔가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부잣집 아들인 것 같은 이미지를 풍길 수 있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아가씨를 꼬시기가 쉬워집니다. 아마 오렌지 족들은 삼다수와 에비앙 가격의 차액인 1500원을 이런 가치를 사는데 지급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명품가방을 사고 싶고, 외제차를 사고 싶은 심리나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단순히 마케팅에 현혹되어서 사고, 골이 비었기 때문에 돈 귀한줄 모르고 헛돈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엔 아무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소비라도, 그 사람은 그 돈을 지불할 때 뭔가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에비앙은 단순히 물을 팔고 있지 않습니다. “갈증해소를 위한 물에 추가해서 에비앙이라는 브랜드를 통해서 여러가지 경험들을 덧붙여 팔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은 오렌지족들에게는 아가씨를 쉽게 꼬시는 것이었고,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중국여행을 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물이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신뢰였습니다.

뉴욕을 여행하다가 스타벅스를 이용하면서 든 생각은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를 팔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다고 주장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화장실을 팔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내를 걸어다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경우 지하철 역을 들어가거나 인근 건물 아무데나 들어가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뉴욕은 공중 화장실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대신 골목마다 널려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커피 한잔을 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운영하시는 많은 의사선생님들은 자신이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의료 행위에 국한된다고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봐야 할 점은 환자들의 소비 역시 단순히 핵심 상품에 국한 되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맥주를 선택할 때 맛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과 똑같습니다.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료행위에 국한되게 생각하시는 경우 항상 논문을 읽고, 최신 지견을 공부하는 세미나에 참석하시는 식으로 노력을 하시게 되겠지요. 이것은 기본입니다. 에비앙이 통 속에 들어있는 물이 대장균에 오염되어 있지 않도록 질 관리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추가해서 고객에게 어떤 스토리 또는 경험을 제공한다는 것은 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제가 운영하는 요양병원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요양병원을 만성 질환을 가진 노인들을 치료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게 되면 노인질환 치료에 대한 최신지견을 열심히 찾아보고 공부해야 하겠지요. 그것은 의사로써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입니다. 거기에 추가해서 요양병원은 효심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해 봅시다. 그렇게 정의를 하게 될 때 고객은 환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모신 자식들로 넓혀집니다. 요양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의 마음은 상당히 복잡하게 마련입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고, 싸워야 하는 부분은 나를 길러준 부모님을 돌아가실 때까지 내가 모셔야 하는데, 내가 그 책임을 다하기 싫어서 요양병원에 맡겨버리는 것 아닌가? 남들이 나를 불효자라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고자 부모님과 자녀들을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행사를 한다던가, 음악회를 열어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더 나은 고객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요.

저는 과거에 소아정신과 병원을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아정신과 역시 아이들의 정신질환을치료하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지만, 저는 모성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소아정신과에 오는 많은 아이들은 부모님들과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소아정신과의 상담자들은 부모님들의 역할 중 빈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모성을 파는 곳이라고 정의를 하는 순간, 우리 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상담자 선생님들의 모성 개발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아직 결혼을 안 한 사람 보다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을 더 우대하게 되고, 상담자 선생님들이 자기 아이 육아 문제로 고민할 때 그 부분을 병원에서 지원을 해 주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상담자 선생님들이 모성의 고귀함을 느끼게 되고, 그럴 때 아동들을 치료할 때 더 고귀한 모성을 쏟게 되니 치료의 질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였습니다.

이런 식의 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재정의 해 보는 것은 내 병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내가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병원 운영을 끌고 나갈지 방향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런 비즈니스 정의는 나를 찾아오는 환자가 그 많은 병원 중에 왜 굳이 내 병원에 찾아왔을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 있습니다.

내과 의사가 내과 질환을 치료하는 병원을 운영할 수도 있지만, “우리동네 주치의개념으로 진료를 한다던가, 산부인과가 분만을 잘 하는 곳일 수도 있지만, “분만 경험을 가족이 공유하면서 가족의 행복을 증진하는 곳으로 다양하게 정의할 때 병원 경영의 방향성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2013년 10월 22일 화요일

14. 인근 경쟁 병원과 친하게 지내기

인근 경쟁 병원과 친하게 지내기

1982 2,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CEO인 크란델은 경쟁사인 브라니프 에어웨이의 CEO인 푸트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크란델: 이럴 수가 있나요? 브라니프 쪽에서 비행기 운임을 낮춘 것은 우리 모두 공멸하자는 것입니다.
푸트만: 무슨 말이신지? 우리회사의 가격 정책에 왜 그쪽에서 간섭을 하시는지요?
크란델: 그쪽에서 비행기 운임을 낮췄으니 우리도 낮출 수 밖에 없지요. 그 다음은 그쪽에서 또 가격을 낮추고, 그러면 우리도 또 낮추고. 결국 가격 경쟁으로 가자는 것인데, 이것은 치킨게임입니다. 우리 모두가 자멸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푸트만: 그래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크란델: 다시 가격을 원상태로 복구하세요.
푸트만: 글쎄요. 이런 제안을 하시다니, 실수하시는 것 같네요.

푸트만은 이 전화통화를 녹음을 했고, 녹음 파일을 공정거래위에 신고를 했습니다. 미국의 독점 및 담합 금지를 규정한 셔어만 법안에 따르면 가격 담합은 범죄 행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크란델은 무죄로 판결이 났습니다. 무죄로 판결난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담합 행위는 위법이지만, “담합을 제안한 행위는 위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화통화에서 만일 푸트만이 가격을 올리는 것을 수긍하고 합의를 했다면 범죄가 되는 것이었겠지요. 그런데 이 경우 크란델이 제안한데서 끝났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셔어만 법안은 담합을 제안하는 행위만으로도 위법으로 규정하도록 바뀌었습니다.

모든 비즈니스에서 공급자는 독점 (공급자가 하나) 또는 과점 (공급자가 소수)이 형성되면, 가격을높이 책정할 수 있으므로 이익을 많이 올릴 수 있습니다. 과점일 경우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 공급자들끼리 담합행위를 하고 싶은 유혹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에 독과점 및 담합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있어서 가끔씩 휴대폰 업체에게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지요.

그래서 명백한 담합을 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산업에서는 관습적으로 담합을 만드는 여러 가지 장치가 진화해 오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은 모두가 자멸하는 치킨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철강 업체를 예를 들어 봅시다. 철강생산량이 어느 한해 너무 많아지면 철강 가격이 폭락하게 되어 모든 철강업체가 공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업계 1위인 포스코가 올해 철강 생산량을 얼마로 하겠다는 경영 계획을 연초에 철강 잡지에 공개를 합니다. 그러면 2, 3위 업체는 알아서 철강 생산량을 조절을 합니다. 만일 철모르는 신규진입업체가 눈치없이 철강 생산을 많이 할 경우 1위 업체는 보복성으로 철상 생산량을 늘려버립니다. 결국 산업 전체가 철강가격 폭락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1위업체는 상대적으로 버티기 쉽지만 군소업체는 견디기 어려워 산업계에서 퇴출되게 됩니다. 이런 일을 몇번 겪다 보면 알아서 1위업체 눈치를 보는 쪽으로 산업계의 질서가 자리잡게 됩니다. 

만일 1위 업체가 2,3위 업체에게 우리가 얼마 생산할 테니 너희들은 얼마만큼만 생산하라고 제안을 한다면 담합입니다. 그러나 철강 잡지에 계획 생산량을 공개하고, 2,3위 업체는 그것을 보고 알아서 조절을 하게 된다면 담합 행위를 하지 않은 상태로 공동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겠지요.

개원가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많은 개업가의 원장님들은 인근 경쟁 병원 원장님들과 원수처럼 지내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병원이 잘 되는 지하철 역 사거리 주변에 경쟁 병원이 여러 개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같은 동네에 수년간 개업하고 있으면서 서로 얼굴도 모르고 지내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의사소통 부재는 공멸을 가져오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경쟁 안과 병원이 확장 개원을 한다고 건물 한 층을 세를 내서 수술센터를 만들면 우리 병원도 같이 확장을 하는 식으로 무한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과도한 투자로 인해서 경영의 어려움을 겪곤 하게 되지요.


의사 협회, 지역 의사회 등 의사 사회는 여러 가지 모임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은 친목을 도모하고 의료적 최신 지견을 공유하는 기능도 하지만, 경쟁자들끼리 원활한 의사소통을 도모함으로써 암암리에 공통의 경영적 이익을 도모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인근 경쟁 병원 원장님들끼리 자주 만나시고, 친해지시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한가지 당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담합 행위는 자본주의 질서를 깨뜨리는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명심하시라는 점입니다. 노골적인 담합을 해서 위법행위를 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2013년 7월 15일 월요일

13. 병원 성장의 단계에 따라 마케팅 전략을 달리 하자

제가 소아정신과 개업을 한지 3년차 되던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하루는 제 병원에 어떤 컨설턴트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면 제 병원의 마케팅을 개선해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저는 매우 관심을 보였습니다.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나름 저를 방문하기 전에 제 병원의 홈페이지에 대한 많은 분석을 하고 왔더군요.
현재 홈페이지의 방문 수(Traffic)가 얼마고, 클릭(Click) 수가 얼마인데, 방문 수 당 클릭 수가 적은 것은 매력이 없다는 뜻이라는 이야기도 했었고, 홈페이지에 고객 예약 시스템이 없다는 지적도 했습니다. 제 홈페이지가 마치 난도질을 당하는 느낌이어서 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당시 병원을 인수한 상황이었고, 그 병원의 홈페이지는 이전 원장님이 10년 전에 만든 것이었습니다. 10년전에 만든 홈페이지이니, 현재의 트랜드에 비하면 낙후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저 역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홈페이지를 개편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일이 바빠 개편할 엄두가 나지 않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다 맞았고, 홈페이지를 개편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오래 전 부터 하고 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시점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제 병원의 홈페이지를 개편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 컨설턴트는 저에게 "이렇게 하면 병원 운영이 점점 어려워 질 수 있으니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 투자를 해야 한다. MBA 까지 하셨다는 분이 왜 이런 작은 결정을 못하시냐?"라며 일침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나름 MBA 를 했다고 경영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내가 왜 홈페이지가 낙후된 상태에서 개편하자는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했을까? 나는 과연 홈페이지 개편 비용이 아까와서 우리 병원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투자를 못하는 소탐대실을 하는 것일까?

근데 좀 생각해 보니, 저의 의사결정에 대한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 병원은 성황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환자들이 너무 많이 와서 신환이 저를 만나기 위해서는 4주를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원이 이미 성황을 이루고 있었는데, 홈페이지를 개선해서 신환이 더 많이 와 봤자, 4주 걸려서 저를 만나는 것이 6주 걸려서 저를 만나게 되겠지요. 대기 시간만 더 길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지, 실질적으로 병원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 보니, 병원은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아직 환자 수가 병원이 소화할 수 있는 capacity 보다 적어서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병원.
2. 환자수가 병원이 소화할 수 있는 capacity 보다 많아서 오는 환자를 더 효율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병원.

저는 그 컨설턴트가 찾아오기 2년 전인 2008년에 병원을 처음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저에게 매우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엄청난 대출을 해서, 병원은 오픈했는데, 환자가 안와서 파리날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 홈페이지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저는 거금 1000만원을 들여서 홈페이지를 당시로써는 최신식으로 만들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정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싶습니다. 아마 홈페이지 업자의 달콤한 언변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모르는 상황에서 홈페이지업자가 얘기하는 것이 다 그런가 보다 싶어 큰 돈을 쓰곤 했습니다.

환자 예약이 없는 날에 병원에 나가 앉아있으면 직원들에게 짜증이 나곤 했습니다.
그런 나를 발견하면서, 병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꿎은 직원들만 불쌍하기도 하고, 자칫하면 직원들 사기를 떨어뜨려 오는 환자 마저 떨어뜨릴 위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직원 중 한명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인근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들을 무턱대고 만나, 학부모 상대로 교양강좌를 하고 싶다고 제안을 드리곤 했습니다. 소아정신과는 그런 강좌를 하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고, 어떤 내용으로 강좌를 할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어필 하곤 했습니다.
마치 영업 사원이 된 것 같아 쑥쓰럽기도 했지만, 병원이 망하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 때 그럴 용기가 있었던 것은 제약회사 다닐 때 영업활동을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교감 선생님은 강의를 어레인지 해 주기도 하셨고, 어떤 분들은 강의는 거절했지만, 그래도 "내 평생 의사가 이런 식으로 와서 세일즈 하는 것은 처음봤다. 우리 학교의 정책 상 강의는 열어줄 수는 없지만, 당신 내가 볼 때 성공할꺼야." 하면서 격려해 주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처음 병원을 개업했을 당시는 제 병원은 첫번째 케이스인 환자 수가 병원 capacity 보다 적어서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단계였습니다.
외부에 내 병원을 알리고 환자를 더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외부에 홍보하는 방법으로는 홈페이지를 잘 활용하고, 네이버 키워드 광고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외부에 강의를 하러 나가는 것도 좋은 수준높은 홍보 수단인 듯 합니다.
그 밖에 잡지 같은 곳에 광고를 한다던가, 신문기자를 활용해서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던가 하는 방법들을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되더군요.
블로그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원장이 매우 부지런해서 매일 글을 하나씩 쓸 자신이 없는 다음에야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해준다고 찾아오는 업체를 함부러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들은 무책임하게 아무 컨텐츠를 베껴서 블로그에 올리기 때문에 자칫하면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의사가 환자에게 친절하고, 설명을 잘 하고, 성실하다면 병원은 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냥 목이 좋고 안좋고에 따라서 3개월만에 자리를 잡는냐, 6개월만에 자리를 잡느냐, 아니면 1년이 걸려서 자리를 잡느냐 차이인 것 같습니다. 1년이 걸려서도 자리를 못 잡았다 싶으면 자리 탓 보다는 본인의 진료 스타일이 문제가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진료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어 부인이나,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잠깐 얘기가 샜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병원이 점차 성장을 하고 자리를 잡으면서, 병원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찾아오는 환자 수가 병원이 처리할 수 있는 Capacity 를 넘기게 되면, 이제는 대기 환자가 생기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외부에서 환자를 더 유치하는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대기가 걸려 있을 경우, 환자를 더 유치하면 대기 시간만 더 길어지게 되겠지요.
이 때는 외부에서 환자를 더 오도록 마케팅을 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이미 온 환자들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병원의 경우 입원실은 항상 Full bed 입니다. Full bed 가 아니더라도 5% 정도의 빈 침상이 있는 수준이겠지요.
서울대 병원에 진료를 보려면 최소 1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고, 그 보다 빨리 보려면 빽을 써야 합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제가 레지던트 할 때는 그랬습니다.)
의사를 만나서 입원 및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나도 그때부터 또 1,2주는 기다려야 병실이 났다고 연락이 옵니다.
이런 경우 외부에 환자 더 오라고 마케팅을 하기 보다는 진료의 효율을 올리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하겠지요.
실제로 대학 병원들은 평균 재원 일수를 줄이려고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어떤 대학병원 원장님에게 들은 건데 평균 재원 일수를 6일 이내로 맞추는 것이 목표라고 하더군요.
90년대 후반 PACS, OCS 등을 도입한 것이 그 노력의 시작 단계였고, 지금은 대수술을 하고 나서 "아직 불안하니 퇴원하기 싫다. 좀 더 회복된다음에 퇴원하고 싶다."고 애원하는 환자들도 매몰차게 퇴원을 시키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상한가요?
입원료를 내고 있겠다는 사람을 굳이 왜 퇴원을 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퇴원을 하면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 병실이 바로 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병원들은 항상 full bed 이기 때문에 입원료 수입은 고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환자 한명이 10일을 입원했건 5일을 입원했건 검사료와 수술비용은 똑같이 내지요.
그렇다면 10일에 1명을 받는 것보다 10일에 2명의 환자를 받을 때 병원 수입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재원 일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사례로, 삼성병원의 예를 들어봅시다.
삼성병원은 얼마전 (2012년 쯤으로 기억됩니다만), 경영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3차 병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1, 2차 병원에서 볼 수 있는 환자들은 1,2차 병원으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얼핏 보면 "의료 전달 체계에 맞는 3차 병원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는 공익적인 측면도 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수익이 떨어지는 경증 환자들을 줄이고, 그 시간에 수익이 큰 중증 환자들로 환자군을 바꾸겠다."는 의도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삼성병원 관계자에게서 그런 의도였다고 들은 것은 아니므로, 그런 의도였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정책으로 단위시간당 수익이 큰 환자들로 환자군이 바뀌는 효과를 가져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이 아닌 일반 비즈니스의 언어로 얘기하자면, "돈 안되는 고객들 보다 돈되는 프리미엄 고객을 유치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환자가 이미 많아서 대기 환자가 생기는 경우, 보다 효율적인 경영을 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 나가는 것은 중요한 경영관련 의사결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개인 병원에 적용하는 방안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제 병원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제 병원에 환자가 오는 경로를 살펴 봅시다.
환자들은 우선 네이버에서 소아정신과를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네이버의 링크를 따라서 홈페이지에 접속을 하고, 홈페이지 내용을 읽어보게 됩니다.
홈페이지 내용이 다른 경쟁 병원들보다 마음에 들 경우, 병원으로 전화를 걸고, 예약을 합니다.
그리고 저를 만나기까지 2주 정도 대기를 해야 합니다.
2주가 지나서 겨우 의사를 만나 초기 상담을 하고 나면 정확한 진단을 위한 심리검사를 해 보자는 권유를 받습니다.
또다른 1주를 기다려서 심리검사를 받고, 다시 1주를 기다려서 의사를 만나서 심리검사 결과를 상담을 받습니다.
이 때 의사는 진단명을 알려주고, 약물처방 이나 놀이치료, 심리치료 등을 권유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환자가 예약을 하고, 치료에 들어가게 될 때 까지 4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 보니 우리 병원이 환자들의 대기 시간은 길지만 모든 단계에서 Capacity 라 초과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사를 만나는데 2주가 걸리고, 심리검사에 1주가 걸리니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는 이미 full capacity 를 넘었지만, 치료실은 실제로 60% 정도밖에 가동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가 병목현상을 만들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병목현상이라는 말을 쓰면 이해가 가시나요?

운전은 하다 보면 차가 막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짜증을 참고 가다 보면 사고 현장이 나오고, 그 현장을 지나면 오히려 차가 쌩쌩 달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병목을 이루는 곳은 막히지만 그 이후 단계에서는 도로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보다 자동차 수가 적은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이럴 경우 병목을 풀어주는 것이 교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교통에서는 사고 차량을 빨리 치워 주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의사 면담과 심리검사 단계가 병목을 형성하고 있다면, 의사 수를 늘리고, 심리검사 전문가 수를 늘리는 것이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심리검사 전문가를 기존의 2명에서 4명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의사를 한명 더 구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했습니다.
실제 그 두가지의 의사결정으로 제 병원은 30~40%의 환자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해 진 것 같습니다.
정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병원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그중 하나는 환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병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병원입니다. 
  • 무턱대고 마케팅을 한다고 홈페이지 개편하는데 투자를 하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 환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병원은 홈페이지 같은 외부 환자를 유치하는 마케팅에 투자를 하는게 좋은 방법입니다. 
  • 반면 환자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는 병원은 오는 환자들에게 보다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창출하는 쪽으로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2013년 7월 14일 일요일

1. 동네 의원끼리 치료비 의논해도 담합? [경쟁자와의 관계]

동네 의원끼리 치료비 의논해도 담합? [경쟁자와의 관계]

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분당에서 가장 상권이 좋은 미금역 사거리에서 소아정신과 개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같은 건물 한층 아래층에서 개업하고 계신 모과 원장님과 병원 운영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 원장님은 최근 병원 운영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는 듯 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힘드실 만 했습니다.
길 건너편에 또 다른 같은 과의 경쟁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 병원은 그동안 4층에서 한 점포를 임대해서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5층을 전부 분양을 받아서 5층 전체를 병원으 만드는 확장 공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100평 수준에서 의원을 운영하다가 최근에 500평 수준으로 확장을 한 셈이었습니다.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셈이었습니다.

인근의 경쟁 병원이 공격적으로 확장을 하자, 저와 만났던 원장님은 불안해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층의 200평 규모의 점포를 추가로 임대해서 수술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투자를 통한 확장 경쟁이 붙은 셈이었습니다. 아마 그정도 투자하려면 아무리 업력이 있는 원장님들도 은행 대출 부담을 끼지 않고 진행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런데, 막상 확장을 해 놓았는데, 생각만큼 환자가 늘지 않았습니다.
저도 개업의를 하고 있어서 이해가 가는 상황입니다.
새로 인테리어를 해서 시설은 으리으리한데, 환자는 없고, 환자들 이용하라고 들여놓은 고급 커피 머신을 직원들이 이용하면서 노닥거리는 것을 보면 괜히 직원들이 미워지고 짜증이 나기 시작을 하곤 합니다.
그 원장님도 그런 심정인 듯 하더군요.
직원들에게 짜증 안내려고 억누르는 대신 본인의 마음은 곪아 가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원장님과 대화하면서 저는 두가지 포인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첫째는 인근의 병원이 같은과라고 하더라도, 과연 진짜 나와 경쟁자 관계인지 확인을 해 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경쟁자라면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출혈경쟁을 피하고 담합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 첫째, "인근 병원이 나와 경쟁자인가?" 질문을 던져 봅시다.
"무슨 뚱딴지 같은 질문인가? 같은 상권에 위치한, 길 건너 같은 업종의 의원인데, 당연히 경쟁자이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저는 경쟁자라는 용어를 "같은 고객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관계" 라고 정의내렸으면 합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잘 하면 저쪽 병원 환자들 빼앗아 올 수 있고, 저쪽 병원이 잘 하면 내 환자를 빼앗기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면 같은 구역에 있는 같은 업종이라도 경쟁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 사례를 소개해 봅니다.

실제 저도 미금역 사거리에서 소아정신과를 개업하고 있었는데, 그 해 봄 무렵에 제 후배가 바로 길 건너에 소아정신과를 오픈했었습니다.
제 병원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들었나 봅니다.
옛날 같았으면 후배가 선배 병원 바로 옆에 개원을 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하던데 시대가 변해도 많이 변한 것 같더군요.
후배가 제 병원 바로 옆에, 똑같은 업종으로 개업을 하는 소식을 듣고 제 기분이 좋았을 리는 없었습니다.
기분도 좋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내 환자들이 그 병원으로 일부 이동을 한다면 어떻게 하나 긴장을 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가 개업을 하고 나서 한달 정도 지나면서 저는 안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환자들이 그 후배에게 안가더군요.
저에게 방문하는 환자들은 제 병원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독특성 때문에 오는 것이었고, 그것은 그 후배가 따라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반면 그 후배에게 가는 환자들은 인근의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 새로 개업했다고 소개해주는 환자가 대다수였습니다. 저도 서울대 병원 출신이지만, 인근 분당 서울대 병원에서는 제가 찍혔었는지 저에게 보내주는 환자는 이전에도 별로 없었으니, 그 후배가 개업했다고 해서 제 병원 경영에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에게 오는 환자들은 입소문으로 오는 환자들이었고, 제 후배에게 가는 환자들은 대학병원에서 보내는 환자들이었던 것이지요.
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는 경로가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후배 병원의 환자가 늘었다고 제 환자가 줄지 않았고, 제 환자라 줄었다고 후배 병원의 환자가 느는 것도 아닌 이런 관계이니 같은 상권이라고 해서 경쟁 관계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환자가 병원을 알고 오는 경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외로 이런 경우는 개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후배 병원은 새로 지었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깨끗하고 럭셔리했습니다.
초반에는 저도 인테리어를 리모델링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습니다.

다시 저와 만났던 원장님 병원 쪽으로 화제를 돌리겠습니다.
저는 그 원장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님은 두개의 병원을 경쟁 관계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지만, 환자의 유입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리서치가 필요하므로 그 의견은 받아들이고 경쟁 관계로 간주하고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두번째 문제인 경쟁관계 병원끼리 담합을 할 기회를 찾는 문제로 생각을 옮겨 봅시다.
상대 병원 원장님과 얼마나 자주 만나시는지 여쭤 보았습니다.

서로 원수 지간인 듯 했습니다.
개업할 때 지역 의사회에서 한번 만난 이후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상대 원장님 얼굴 보기 싫어서 지역 의사회도 안나가신지 오래 되셨다고 하더군요.

이런 사례가 의사 사회에서 흔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쟁 관계일수록 서로 자주 만나는 것은 비즈니스를 위해서 매우 필요합니다.

A 와 B 라는 경쟁자가 있다고 칩시다.
그리고 두 경쟁자는 같은 상품을 둘 다 1000원에 팔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장 점유율은 A 가 70%, B 가 30% 라고 합시다.
같은 가격인데 왜 차이가 나느냐구요? A 가 시장에 먼저 들어온 First mover 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 둡시다.
B 입장에서 A를 뛰어 넘는 방법을 고민하겠지요. 이 때 여러가지 방법을 쓸 수 있는데, 가장 허접한 방법은 가격을 인하하는 것입니다.
왜냐구요? 서로 손해를 보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B 가 가격을 900원으로 낮추었다고 합시다.
A 와 B 가 동일한 상품을 판다고 가정을 하면, 기존에 A의 고객들은 가격이 싼 B 상품을 사는 쪽으로 이동을 할 것입니다.
기존의 A의 70% 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A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히 가격을 낮추겠지요.
A는 가격을 800원으로 낮춥니다.
그것을 보는 B 는 700원으로 가격을 낮추고, 다시 A는 600원으로 낮추겠지요.
결국 A 와 B 는 같이 손해를 보는 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런 식의 경쟁을 가격전쟁 (price war)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례는 항공 산업에서의 티켓 가격 경쟁 사례, 제철 산업에서 철강 생산량 증대를 통한 가격 경쟁, 통신산업에서 통신비 경쟁 사례 등 여러 산업 영역에서 나타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가격 경쟁으로 큰 손해를 본 경험이 있는 산업의 경우 서로 경쟁은 하되 가격 이외의 부분에서만 경쟁을 하는 식으로 암암리에 산업계 내부의 룰이 형성되곤 합니다.

근제 만일 경쟁관계에 있는 두 회사의 사장이 호텔에서 같이 만나 밥 먹으면서 "우리 가격은 1000원으로 유지하고 싸우지 말자." 라고 대화를 했다고 칩시다. 그게 만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발각이 되면 엄청난 범죄로 간주됩니다. 심하면 징역을 살 수 있는 큰 범죄입니다.
자율경쟁이 시장 질서의 근본 원칙으로 간주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는 담합은 체제를 흔드는 무서운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담합을 하는 것은 범죄이니 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담합을 하지 않아도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바로 시그널을 보내는 것입니다.
제철 산업을 예로 들어 봅시다.
매해 신년 초기에 우리나라 철강 생산량의 1위를 자랑하는 포스코는 신문에 해당년도 철강 생산 계획 유모를 공고합니다.
이 공고 왜 할까요? 누구 들으라고 하겠습니까?
일반 소비자가 포스코가 철강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지 알아서 뭐 하겠습니까?
이 공고는 바로 경쟁업체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만큼 생산할터이니 너희들은 알아서 생산량을 조절해라. 괜히 너무 많이 생산해서 생산 과다로 가격 폭락이 일어나면 혼난다."

서로 "우리는 얼마 생산할 테니 너희는 얼마만큼만 생산해라." 라고 약속을 한 적이 없으니 담합 한 적은 없는 셈이지요.
그냥 우리는 사실을 공표했고, 경쟁자들은 그 사실을 보고, 알아서 생산량을 조절했을 뿐입니다.
이런 식의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많은 산업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공생 전략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의사들은 중세 시절 부터 길드제도라는 것을 누려왔습니다.
이 길드제도는 지금도 남아있지요.
우리가 수련의, 전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이 길드 제도의 apprentice 제도의 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 기술을 익히는 수련 과정이기도 하지만, 값싼 노동력을 선배들에게 제공하는 5년의 수련기간을 제공함으로써 그 전문가 단체에 입문하는 값을 치루는 것이지요.

길드 제도는 apprentice 제도 말고 다른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독점 기능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지역의 대장장이 들이 있는데, 타 지역의 대장장이가 우리 지역에 들어와서 장사를 하면 길드 회원들이 몰려가 그 가게를 부숴 버렸다고 합니다. 이는 경쟁이 과해 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함으로 인해 공급의 과잉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의사 협회, 지역 의사 협회 같이 의사들의 학술단체, 친목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는 같은 업종으로 개업하고 있는 의사들끼리 친목을 도모하기도 하고, 학술 회의를 통해 공부를 하는 기능이 주된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는 길드의 근본 기능이었던 "동업자들의 권익 보호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지역의 경쟁 병원끼리도 서로 자주 만나서 친해졌다 칩시다.
"요즘 시술 가격이 자꾸 떨어져서 걱정이에요. 이렇게 싼 가격으로 시술을 한다면 재료를 얼마나 허접한 것을 쓸지 걱정이에요. 나는 돈 버는 것도 좋지만, 그것 보다 의사로써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요. 가격을 합리적으로 받고 대신 좋은 재료를 쓰고 시술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하고 환자에게 설명을 충분히 해 주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좋은 의사라고 생각해요." 라는 얘기를 한다고 합시다.
그 얘기를 듣는 경쟁 병원 원장님은 여러가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 상대 병원 원장님은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으시구나. 내가 가격을 낮추다가는 업계에서 욕을 먹겠구나." 등등.
이러면서 암암리에 가격 경쟁을 피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얘기한 두 경쟁관계의 원장님도 자주 만나서 자주 얘기했다면,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통한 확장 경쟁을 안하고도 현재의 병원 경영을 잘 해 나가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가까운 위치의 원장님들끼리 서로 골프도 치고, 맥주도 마시면서 친해지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경쟁자에게 노골적으로 우리 가격을 200만원으로 유지하고 내리지 맙시다. 라고 제의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명백한 담합행위이고, 이는 형사처벌도 가능한 무서운 범죄 행위입니다.
대신 같이 술자리를 하시면서 자신이 가진 의사로써의 소신을 얘기하십시오.
"나는 너무 상업적으로 가고 싶지 않다.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면서 거기에 정당한 가격을 매기고 싶다. 그렇게 해야지 너무 가격을 출혈 경쟁을 하면 진료의 수준이 떨어지고 그것이 환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겠는가. 나는 의료의 상업화를 반대한다. 나는 숭고한 의사로써의 철학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진료를 할 것이다."

이런 얘기를 전달하면 경쟁다는 아 이 선생님은 가격을 낮추거나 출혈 경쟁을 하지 않겠구나. 하면서 안심을 하겠지요. 그러다 보면 경쟁 병원도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안심을 할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하는 것이 환자에게 그리고 우리 병원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이 될 것이입니다.

그냥 자주 만나시고 친해지시고,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시는 것으로도 충분히 담합의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때 가격 출혈 경쟁을 막고, 그러면 합리적인 가격을 형성하고, 그러면 결국 환자들에게 저가로  진료하면서 저질 진료를 하는 사례를 막을 수 있거든요.
그게 우리 사회의 의료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2013-07-14

2013년 7월 7일 일요일

15. 내가 가진 트래픽의 자산가치를 활용하자

제가 친하게 지내는 내과 원장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내과 개원을 해서 10년 이상 성실하게 병원을 잘 운영하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하루에 200명 환자를 진료하신다고 하니, 매우 병원을 잘 운영하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장님은 한가지 고민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많이 보면 뭐합니까? 하루 70명 이상 진료하면, 제도적으로 진료 단가가 오히려 떨어집니다. 환자를 많이 보는 게 오히려 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저를 믿고 찾아오는 환자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안 봐 주고 돌려 보내면 그것은 의사로써 도리가 아니지요."
"저도 전공의 때 성형외과나 피부과를 전공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어요. 이렇게 원가도 안남는 진료를 한다는 것이 자존심도 상하구요. 저도 비급여 진료 항목을 개발해서 단위 시간 당 수가가 좀 더 높은 진료를 하고 싶습니다."
위와 같은 푸념은 외래 진료를 많이 보시는 원장님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흔한 내용입니다.

마케팅 측면에서 본다면 병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환자가 적어서 고민하는 병원이고, 또 하나는 환자는 많은데 수익이 적어서 고민하는 병원입니다.
환자가 적어서 고민하는 병원은 환자를 어떻게 유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환자가 많은데 수익이 안 나서 고민하는 병원은 좀 복잡합니다. 이런 원장님들은 공통적으로 의사가 교과서적인 진료에 전념하지 못하고, 비급여 항목을 찾아 개발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표현들을 자주 하시곤 합니다.

"의사가 교과서적인 진료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어야 바람직한 의료 환경이다."
이런 구호는 2003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대다수의 의사들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점점 교과서적인 진료만 해서 병원을 경영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한번 엉뚱한 질문들을 던져 봅니다.
1. 서울대학교병원, 삼성병원 같은 대형병원들은 진료 수입만으로 경영이 잘 되는가?
2. 네이버나 구글은 검색 수입만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을까?
3. 영화관은 영화 티켓 수입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눈치 빠른 분들은 진료 수입, 검색 수입, 티켓 수입의 공통점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바로 대학병원, 네이버나 구글, 영화관의 본연의 업무에서 나오는 수입입니다.

1. 대형병원부터 살펴 봅시다.
내부 회계 자료를 직접 본 적은 없으므로 제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경영에 참여하시는 교수님과 대화를 한 내용으로 유추해 보면, 대학병원들은 진료 수입만으로는 적자를 보는 것 같습니다
대형병원이 경영이 유지되는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장례식장입니다. 대학병원들의 장례식장은 항상 초만원이고, 그 가격도 싸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장례식장 말고도 대형병원들은 수익원은 또 있습니다. 요즘 대학병원 지하에 가 보면 푸드코트에 왔는지 착각이 들 만큼 맛있는 식당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병원 현관이나 2층에는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지요
이런 식당들이나 카페는 상당히 좋은 목에 위치한 셈입니다. 대형병원 로비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세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지 모릅니다. 그 어마 어마한 인구 중 10%만 커피를 한잔씩 사 먹는다고 해도 그 수가 가히 엄청난 수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2. 다음은 네이버나 구글을 생각해 봅시다.
네이버나 구글은 검색 엔진으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네이버는 기존에는 야후, 한미르, 알타비스타, 라이코스, 다음 등 수많은 검색 회사중 하나로 그다지 두곽을 나타내는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즈음해서 "지식in" 이라는 상품을 출시하면서, "네이버에게 물어봐."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차별화된 검색 서비스를 내 놓으면서 치고 나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명실상부하게 시장 점유율 80%를 자랑하는 거대 독점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는 서비스를 이용하고 돈을 낸 기억은 없습니다. 검색 서비스만 보면 네이버는 적자를 보는 수준이 아니라, 수입이 제로인데 지출만 하고 있는 바보같은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해서 "너는 봉사하려고 사업하냐?" 라는 얘기를 듣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네이버는 돈도 안되는 검색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들려고 꾸준히 어마어마한 규모의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검색을 하려고 네이버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그 사람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네이버는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광고를 하고, 그 광고를 하고 싶어 하는 광고주들에게 돈을 받는 구조로 회사의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셈이지요.
결국 자신의 영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게 만들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상품을 팔아먹는 것이 현대 사회의 비즈니스의 한 특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글도 마찬가지입니다. 구글 드라이브를 써 보셨나요? 구글 드라이브를 안 써 보신 분들도 웹하드, 에버노트, 드롭박스 같은 것을 써 보신 분들은 제가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듯 합니다.
구글 드라이브의 경우 100GB 의 저장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IT 업계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제가 구글 드라이브에 데이터를 저장할 때 아마 하드 디스크인지, 서버인지, 뭔지 모르지만 구글은 엄청난 물리적 공간을 저에게 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 비용이 들어가겠지요. 구글은 저 같은 사람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돈을 한푼도 요구 안하구요. 왜 그런 쓸데 없는, 손해를 보는 사업을 하고 있을까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인해서 구글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쓰게 하고, 그래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그 사람들을 대상으로 뭔가 돈 되는 다른 상품을 팔겠다는 것이겠지요.

3. 끝으로 영화관을 생각해 봅시다.
영화를 하나 볼 때 우리는 7000원을 냅니다. 그리고 2시간 이상 그 공간에 머물게 되지요. 영화값이 자꾸 오7르니 짜증나지 않나요?
그런제 영화관 운영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봅시다.
한 커플이 데이트 차 영화관에 옵니다. 두명이니 14,000원을 내고 영화를 보지요. 이 사람들은 주차를 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한대 세우고 들어왔겠지요. 영화를 본 티켓을 제시하면 주차비가 공짜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영화관 운영자는 건물주가 아니라 건물주에게 세를 내고 영화관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겠지요. 그런데 주차비는 건물주의 수입입니다. 그렇다면 건물주 입장에서 영화를 본 사람에게 주차비를 공짜로 해 줄 이유가 없겠지요. 누군가 내가 안낸 주차비를 건물주에게 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누구일까요? 당연히 영화관 운영자가 우리 대신 주차비를 건물주에게 내고 있는 것입니다.

주차비는 한시간에 3,000원이라고 칩시다. 고객들은 영화 2시간 보고, 바로 나가지 않겠지요. 저녁식사도 하고, 어영부영 하다 보면 3시간 정도 주차를 하게 됩니다. 결국 영화관 운영자 입장에서는 영화 티켓 두장 팔고 14,000원 받아서 9,000원을 주차비로 내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만 비용으로 드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필름 사 오는 가격으로 수억원을 지출했습니다. 영화가 한번 상영되면 바닥에 팝콘 같은 여러가지 쓰레기도 널부러집니다. 영화 한번 상영할 때 마다 청소 아주머니가 청소를 합니다. 청소아주머니도 고용해야 하고, 티켓 받는 직원도 고용해야 하고 티켓 파는 직원도 고용해야 합니다. 남아있는 가장 큰 비용을 아직 생각 못했네요. 가장 큰 것은 뭐니 뭐니해도 건물 임대료겠지요.

영화관 운영자는 영화 티켓을 팔아서 남는게 없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수입원이 있습니다. 영화관에서는 사람들이 영화만 보는 법은 잘 없습니다. 팝콘을 사던지, 콜라를 사던지, 핫도그를 사던지. 뭔가 먹는 것을 사서 들어가곤 합니다.
과거에 제가 컨설팅 회사에 있을 때 영화 산업쪽을 컨설팅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분석하기로는 영화관 입장에서는 영화 서비스로는 적자를 보는 대신 팝콘을 팔아서 수익을 남기는 사업이었습니다. 영화 장사는 팝콘 장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관에 갈 때 도시락 싸 들고 가는 분들, 그리고 외부에서 음식 반입은 안된다고 써 좋은 것을 보고 욕 하신 분들, 이쯤 되면 좀 미안한 생각 안드시나요? 영화관 가서 팝콘 하나 정도는 사 주시는게 미덕인 듯 합니다.

이 정도 쯤에서 저에 대한 비난이 들립니다. 어떻게 신성한 의료 행위를 다른 상업적인 비즈니스와 같이 놓고 생각하느냐구요? 그 말에 대해서는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의사인 입장에서 비즈니스적인 논리를 생각 안하고 그냥 교과서적인 진료만 하고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운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의과대학에 입학한 1993년 이후 지금까지 진행되 온 과정을 볼 때 의료 환경은 점점 시장 논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여기서 저는 상황의 변화에 대한 가치 판단은 배제하고 그냥 시장 논리에 맞춰서 풀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위에서 대학병원, 네이버, 구글, 영화관 예를 들었는데 이 사업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겠나요? 이 글에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트래픽 Traffic" 이라는 개념입니다.

카페를 열던지, 식당을 열 때 우리는 "목이 좋은 곳에 열여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여기서 목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니, 목은 "짐승이 지나가는 길목, 도피로 등 포수가 대기하는 장소." 라고 나와 있군요.
점포를 열 때 목이라는 것을 잘 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결국 그 앞을 지나가는 유동인구의 수가 많은 곳에 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코엑스 같이 엄청난 유동인구가 지나다니는 곳에 점포를 열면 왠만해서는 장사가 잘 됩니다. 우리나라에 대표적으로 목이 좋은 곳은 명동, 강남역, 코엑스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유동인구는 사업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위에 네이버나 구글, 그리고 영화관은 자신의 본연의 업인 검색 서비스, 영화 서비스에 전념해서는 먹고 살수 없는 현실을 그리 원망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신 자신의 본연의 업무가 돈은 안되더라도, 유동인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그 유동인구에게 부가적으로 팔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해서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현명해 보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자존심도 없는 것 같기도 하지요

대형병원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진료만으로 돈을 못 번다고 불평은 하는 것 같지만, 막상 그들은 장례식장, 커피샵, 푸드코트 등을 통해서 수익을 내고 있더군요. 서울대학교병원 일층 로비에 서서 그 현관을 지나가는 엄청난 유동인구를 한번 보십시오. 엄청난 인구가 지나가고 있고, 그들은 커피 한잔 정도는 들고 있지 않던가요?

이제 내과 원장님 얘기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내과 원장님이 운영하는 내과 의원은 하루 동안 200명에 육박하는 엄청난 수의 환자들이 병원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한사람이 운영하는 점포 치고는 상당히 많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비즈니스 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냥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뭔가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균일한 특성을 가진 고객들입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어 있는 사람들이지요.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냥 보통 인구와는 달리, 자신의 건강을 믿고 맞길 수 있을 정도로 내과 원장님과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많은 비즈니스에서 고객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투자하고 있고, 그냥 다양한 관심을 가진 고객이 아니라 특정 관심을 가지는 균일한 특성의 고객군을 확보하기 위해 영업채널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내과 원장님은 이미 엄청난 가치가 있는 잠재 고객 군을 확보 하고 있으신 셈입니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와는 달리 내과 원장님을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오는 수많은 고객을 대상으로 진료 수익 이외의 다른 수익을 창출하려 노력한다면 그 내과 원장님은 보다 더 나은 비즈니스를 운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환자들에게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건강식품 중에 의사의 눈으로 볼 때 실제로 가치있는 건강식품을 선별해 준다던지, 그 환자들의 건강상태에 적합한 의료 보험 상품을 소개해 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또 가다실이나 세바릭스 같은 자궁 경부암 백신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할 듯 합니다.

글을 이 정도 쓰고 제 와이프에게 이 글을 보여 주면서 피드백을 달라고 했더니 울 와이프가 한마디 합니다. (참고로 저희 와이프는 경영학을 전공해서 제가 어떤 글을 쓰면 피드백을 많이 물어보곤 합니다.)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고, 자꾸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다가 오던 환자 마저 떨어져 나갈 수 있는 위험이 있지 않을까?"
"우리 엄마가 약국을 운영할 때 철학이 "나는 쓸 떼 없이 돈되는 영양제 같은거 환자에게 권하지 않아서 신뢰를 얻었다."라고 하던데. 그런 측면도 생각해야쥐..."
제 와이프의 장모님은 매우 성공하신 약사이셨습니다. 약국이 잘 되었긴 잘 되었던 듯 합니다.
그 얘기를 듣는 저는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질 수는 없겠지요. 제가 반론을 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장례식장을 화려하게 지어 놓고 비용을 세게 받는다고 사람들이 서울대 병원을 안가더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일층에 커피샵을 화려하게 유치했다고 해서 이 병원 상업적이네 하면서 사람들이 안가더냐?"
와이프와 토론을 하던 중 한가지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되, 환자들에게 본연의 서비스인 진료가 후져진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된다."
"부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되, 이 서비스가 상업적이기 보다는 환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배려의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그런 느낌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런 얘기 하는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병원경영을 해야 저수가체계 하에서... 폐업해서 동네 환자들을 방치하는 사태를 막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