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6일 화요일

33. 프롤로그: MBA 의사가 말하는 잘되는 병원의 30가지 비밀

지금까지 쓴 내용들을 정리해서 책을 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책의 서문을 적어보았습니다.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부분들을 담아보려고 노력했습니다.

Prologue

MBA 졸업반 무렵, 월스트리트의 한 투자은행에 면접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가 왜 투자은행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선진 금융기법을 배우고, 이를 의료 산업에 적용시켜 한국의 의료 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면접관은 저에게 계속해서 허점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졌고, 저는 안 되는 영어로 내가 왜 투자은행에 들어가고 싶은지 땀을 뻘뻘 흘리며 대답을 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한 얘기는 저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You not hungry enough!”

떨어지고 나서 생각해 보니, 면접관은 제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느낀 것 같았습니다. 제가 거창한 명분에 치우쳐 있어서, 정글 같은 월스트리트 세계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 같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차라리 “돈 많이 벌고 싶어서 투자은행 들어가고 싶다”고 했어야 했을까요? 어찌되었던 제가 투자은행에 들어가고 싶은 각오를 절실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저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돈 많이 벌고 싶다”는 대답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너무 쌍스러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 어려서부터 돈에 초연하는 선비정신을 높게 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영향도 있을 것입니다. 의과대학 다니는 동안 검증되지 않은 상업적 시술에 대해 배척하는 문화 속에서 교육받은 영향도 있을 것 입니다. 저는 이런 우리나라 의사 사회의 문화가 참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문화가 살인적인 저수가 정책하에 어려운 의료환경 속에서도 일부를 제외한 절대 다수의 의사들이 의학적 자존심을 유지하면서 검증된 교과서적 진료를 고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우리나라의 의료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돈 버는 방법을 얘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현재의 어려운 의료 환경 속에서도 건실한 경영을 통한 경영 합리화를 통해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시스템을 만들어가기를 원하는 작은 바램을 가지고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역시 병원을 경영하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어떤 분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MBA, 컨설팅 경력을 가지고 왜 이런 어려운 의료 사업을 하는가? 그 보다 더 좋은 사업 기회가 많을 텐데.”
다양한 경험을 해 보았지만, 저는 그래도 병원을 경영하는 사업이 가장 행복한 사업인 듯 합니다. 이는 우리가 선한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 중에는 여러 가지 사업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로 노예 상인들의 사업은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입니다. 그러나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반면 병원 사업은 사회에 엄청난 선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업입니다. 우리의 고객인 환자분들에게는 생명 유지 또는 건강 증진이라는 고객 가치를 만드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직원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수많은 거래처에게 매출을 만들어 줍니다. 건물주에게는 임대료 수입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은 수익에서 세금을 냅니다. 이 세금으로 국가는 사회의 소외된 계층에게 복지 혜택을 만들어 줍니다. 이 모든 가치를 주고 난 나머지가 수익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객과 다른 많은 관련자에게 가치를 충분히 만들어 주어야 수익이 극대화되는 비즈니스입니다. 사회에 선한 가치를 잘 만들 때 나에게 수익이 떨어진다니, 이렇게 바람직한 사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병원 경영자는 다른 누구보다 훌륭한 기업가(Entrepreneur)입니다. 저는 병원 경영자들이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투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환자들에게 고객 가치를 제공하고, 우리를 믿고 따르는 직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고, 거래처들을 먹여 살리고, 세금을 내서 사회의 소외계층에게 복지 혜택을 주며, 척박한 의료환경 속에서 병원이 버텨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하여 고생하시는 수많은 병원 경영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컨설팅에서 배웠던 다양한 논리적 사고 방법, 제약회사에서 배웠던 마케팅과 영업 스킬 등으로 무장되어 있었던 저는 2008년 초 의원을 개원했습니다. 당시 개원을 준비하면서 시장 분석, 마케팅 플랜 등을 거창하게 만들었고 자신감에 넘쳐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병원을 개원하고 3개월 정도 지나면서, 그런 거창한 분석과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사업하는 사람은 항상 겪게 되는 막연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을 받다가 막상 제 사업을 시작하니,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항상 크고 작은 문제들이 터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새로운 문제가 터졌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컨설턴트 친구들은 명쾌한 해법을 얘기해 주지만, 그것을 실행하기에는 제 자신이 지쳐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개업하고 한 1년동안 병원에 매여서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모처럼 용기를 내어 하루를 진료를 비우고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나갔습니다. 모처럼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서 저의 사업 방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같이 라운딩을 했던 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홈페이지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차 정도 되었던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마음이 많이 힘들다. 사업이 언제쯤 안정이 될까?”

“글쎄. 사업이 오래 된다고 해서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들을 만날 때 해법은 안보여도 ‘막연히 또 어떻게 해결되겠지’ 하는 여유는 생기는 것 같다. 사업이 안정된다는 것은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공이 커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사업을 시작한지 8년차 접어드는 지금, 저에게도 그런 내공이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전 같으면 잠 못 자고 고민했던 문제들이 지금이라고 안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잠은 잘 자면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내공도 생겼지만, 주변에 문제를 같이 고민할 팀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저는 골프를 좋아합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유는 공이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상쾌해지는 면도 있지만, 골프의 본질이 많은 고민이 쌓여야 실력이 느는 스포츠이기 때문입니다. 골프장에는 해저드(Hazard)라는 것이 있습니다. “위험”이라는 뜻이고 골프장에서는 “장애물”이라는 뜻입니다. 해저드는 물이나 꽃밭,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보일 때는 해저드가 성가시게 느껴졌습니다. 물 앞에서 공을 치면 힘이 들어가서 여지없이 물에 빠지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해저드가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한 퍼블릭 골프장에 놀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해저드가 없는 쉬운 골프장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난생 처음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동반자들이 싱글패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해저드 없는 골프장에서 싱글 했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해저드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성가시게 느껴졌던 물이나 꽃밭, 나무들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해저드는 골프를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요소인 듯 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성공하면 무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항상 골치 아픈 사건 사고가 생기고, 난관 속에서 헤매고 있지만, 이런 일들이 골프에서의 해저드와 같이 내 사업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은 그냥 저 혼자서 생각한 것들이 아닙니다. 이 글을 쓸 때까지 많은 분들이 같이 디스커션 상대가 되어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훌륭한 강의를 해 주셨고, 어떤 분들은 강의 준비를 위한 공동 작업을 해 주셨습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언급해 보자면, 우선 정신과 전공의 시절, MBA 를 가겠다는 말에 흔쾌하게 허락하시고 지원해주셨던 권준수 교수님, MBA 학생 시절 항상 술 친구 해 주면서 디스커션 상대가 되어 주었던 김영욱 현 CJ E&M 팀장님, Bain & Company 에서 사수로써 자상하게 일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던 장일준 상무님, 컨설팅 첫 프로젝트에서 클라이언트로 만났던 이동호 선생님, Merck 에서 전적으로 신뢰를 주시고 신나게 일 할 수 있는 장을 펼쳐주셨던 조정열 현대 갤러리 대표님 등이 있습니다. 한양대학교 경영학과 이상명 교수님은 불성실하지만 나름 배워보려고 열심히 출석하는 제자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노바티스의 정승원 상무님은 경영 현장에서 느낀 점들에 대해서 디스커션 상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해수 소아정신과 장경준 원장님은 돈 관리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등에 대해서 많은 지혜를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료경영고위자 과정에서 강의할 기회를 만들어주신 김주한 교수님과 권용진 서울북부병원 원장님 덕분에 뒤죽박죽 되어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문화병원의 구자성 기획실장님의 위기관리 강의와 한미약품의 손지웅 선생님의 협상 강의는 많은 인사이트를 주는 명강의였습니다. 동아일보 이진한 의학전문기자는 같이 공동 작업한 내용을 책에서 언급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맥도날드 점포설계팀에서 일하고 있는 배지민씨를 통해 맥도널드 사업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진심 어린 조언을 주시는 서울아동병원의 박양동 회장님을 통해서 소아과 비즈니스의 특성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족한 선배와 같이 동업하겠다고 보장된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고생하고 계시는 존경하는 김치원 원장님과 항상 든든하게 제 옆을 지켜 주면서 병원의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시는 김종명 부원장님, 이 두 분을 만난 것은 제 인생에 행운이었습니다. 두 분이 있어서 병원 경영에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글 써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던 차에 Kormedi.com 의 이성주 대표님이 칼럼을 써 보라고 제안을 해 주셔서 이 작업이 진행이 된 듯 합니다. 이 책을 내는데 도움을 주신 MBA Korea 의 조성민 대표님과 두드림 미디어의 전호림 대표님에게도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가족을 잘 만난 행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MBA 간다고 할 때는 반대하셨다가도, 결국에는 아들의 선택을 믿어주시고, 항상 새벽기도로 응원하셨던 부모님, 사위의 선택을 항상 응원하시고 제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시는 장인 장모님, 그리고 제가 2년에 한번씩 직장을 옮기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딴지 걸지 않고 믿어준 와이프. 이들이 있었기에 비록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경험들을 신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을 “MBA 의사가 말하는 잘되는 병원의 30가지 비밀”이라고 거창하게 지었습니다. 막상 읽어보시면, 병원 경영으로 고생하시는 이 땅의 많은 의사선생님들에게 속 시원한 해법을 드리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 다만 MBA를 하고 컨설팅 경험을 가진 의사라고 하더라도 다른 의사선생님들과 별반 다름 없이 척박한 의료 환경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기업가 정신의 가진 의사로써 환자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병원 경영을 씩씩하게 해 나갈 수 있는 작은 인사이트를 얻으셨으면 하는 소박한 바램입니다.

2015년 1월 1일
배지수